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이 세상의 시를 서정시, 서사시, 극시로 나누는 3분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정리한 것으로 벌써 3천년이나 된 갈래론입니다. 그런데 현대로 오면 서사시가 소설로 갈라지면서 서사시는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시의 갈래가 2가지로 압축되는 거죠. 그런데 이런 분류법이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상 갈래 나눔의 의미가 사라집니다.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시 수업을 할 때마다 이 얘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시의 갈래를 새롭게 나누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의미도 없는 3천년이나 된 낡은 갈래론을 앞으로도 계속 배워야 하는 걸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의 갈래론을 제시한 이래 새로운 갈래론을 고민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 놀랍지 않은가요?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갈래론이 옳다는 얘긴데, 사실 현실에서 보는 그 갈래로는 시의 특성에 따라 분류하는 데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쓸모없는 것을 습관처럼 되풀이하며 시험 출제용으로 배우는 것이죠. 이 악순환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래서 제가 인류사 3천년만에 새로운 시 갈래론을 만들었습니다. 그 갈래론을 설명한 것이 이 책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새롭게 나온 갈래론은 이뿐이 아닙니다. 불과 30여 년 전에 조동일이 문학의 4갈래론을 제창하여 한 동안 논란이 일더니, 지금은 교과서에서 모두 이 이론을 채용하여 가르칩니다. 그러니 시 갈래론에서도 새로운 이론이 나올 때가 된 거죠.

제가 시를 한 2천여 편 쓰고, 남의 시집을 한 1천 권쯤 읽어보니, 시의 발상법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분석해보면 시의 발상법은 3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는 가장 짧은 문학(!)’이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독특한 방법이 생깁니다. 그 방법이 3가지로 압축된다는 것이죠.

가장 흔한 것은 비유의 방법입니다. 시에서 가장 많이 쓰이면서 가장 쉽게 활용되는 방법이죠. 그리고 이미지만을 쓰는 방법이 있고, 또 아무런 기교 없이 직접 말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저는 ‘시의 3원소’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색의 3원소가 빨강 파랑 노랑인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시를 보면 이 세 가지 방법이 선명히 나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섞여서 나타나는 수도 많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색이 빨강 파랑 노랑이 조금씩 섞이면서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섞이는 방법까지 감안하면 시를 아주 쉽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책 속에는 학생들의 시 99편이 실렸습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쓰라고 시킨 것들입니다. 그런데 한 편 한 편이 주옥같습니다. 이 책을 시인 몇 명에게 돌렸더니, 책 좋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고, 아이들 시 좋다는 얘기만 합니다.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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