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땡볕에 주눅들어있던 작물들이 자연이 선물한 시원한 지하수로 목욕하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장마가 시작됐지만 마른장마다. 비를 대신하여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지하수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개발업자와 통화하여 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우리가 도착하니 먼저 도착하여 지형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곳엔 지하수가 흐르고 있어 소형기계로 작업해도 물이 나온다고 했다. 작업해 놓고 연락하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며칠 후 고향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지하수 작업을 하러 왔다가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기계를 철수하고 돌아갔다고 하셨다.

지난여름 40여일 지속된 가뭄으로 농작물이 타들어가 엄청난 고생을 했었다. 경운기로 물을 운반하여 겨우 목숨만 유지하며 살려냈다.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내 자신조차 메말라 버렸었다. 그때 지하수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지하수 개발을 결심했던 것이다. 다시 공사 관계자를 만났다. 이번엔 중형기계를 권장했다. 자신하기에 믿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작은아버지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실패했구나하는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다. 작업하다 철수하여 돌아갔다고 하셨다. 눈앞에 커다란 불덩어리가 가로 막는다. 이젠 포기하기로 했다. 전년도와 같이 물과의 전쟁을 하기로 결심 했다. 나에겐 물 복이 없나보다.

요즈음은 옛날과 달리 비가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농사일이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한낮 뜨거운 태양 아래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땅에 인사하고 있는 작물들을 바라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다 밤을 맞이하고 새벽이슬이 내리면 병상에서 거즈에 물 적셔 입술 적시는 모양으로 겨우 몸을 적시고 , 어깨 추켜세울 즈음이면 다시 땡볕에 축 처지고 만다. 기운 차릴 여지가 없다. 우리 어린 시절엔 소나기도 자주 내렸건만 요즈음은 소나기 소리조차 들어본 지 오래다.

겨울이 물러서자 이번엔 대형관정을 권유했다.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한다. 다소 망설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군청에 신청서 접수하고 곧바로 착수했다. 기대 반 걱정 반. 200m를 파 내려가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더 파보고 철수해야겠다고 했다. 잠시 후 막 포기하려는 순간 갑자기 물이 솟구쳐 올랐다. 드디어 자연의 허가를 얻어낸 것이다. 모두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하늘을 원망이라도 하듯 높이 높이 솟아올랐다. 가슴이 뭉클하다. 마을 사람들도 달려와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수질검사를 마치고 모든 절차를 마쳤다. 밭에는 뜨거운 태양을 적셔볼 양 스프링  클러가 높이 솟구치며 돌고 있다. 작물들이 춤을 추며 좋아한다. 지하수 개발은 자연에 도전이 아니고 자연을 공유한 것이다. 깊은 땅속 암반 아래서 누군가가 불러줄 날만을 기다리다 이제 그때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자연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나 보다.

우리 몸에는 핏줄이 전신에 있으며 그를 이용하여 피를 공급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엔 엄청난 지하수가 피와 같이 흐르고 있다. 몸에서 피를 뽑아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치료하듯 우리는 지하수를 이용하여 자연에 병들어가는 식물에게 생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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