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너무 가난해서 학교도 못가고 /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게 했어요 / 지금은 경로당 학교에서 / 한글도 배우고 / 색칠 공부도 하고 행복해요 / 세상을 잘 만났는가 / 선생님을 잘 만났는가 / 내가 공부할 복이 있는가 /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 내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해요”

며칠 전 연구원 로비에 전시된 40여 편의 시(詩) 중 ‘내 인생’의 뒷부분이다. 글씨는 삐뚤삐뚤, 크기도 들쑥날쑥, 그래도 맞춤법은 틀리지 않았다.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용기 내어 글을 배운 후 살아온 세월을 온전히 담아서 지은 시(詩)이다.

가난해서, 동생들을 돌봐야 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한 서린 인생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흔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일 법도 한데, 필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내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행각해요’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참 허무하게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반백년을 살아오면서 공부할 수 있어서,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글을 배우고, 오랬동안 공부를 해서 얻은 지위와 돈, 관계들에서 행복을 찾았다.

“(중략) / 한글 공부 하려고 / 손을 호호 불며 학교에 갔다 / 하루에 한자씩만 배워도 / 팔십 안에는 다 배울 것 같았다 / 날이 가고 달이 가고 / 이제는 편지도 잘 쓴다 / 은행 볼일도 잘 본다 /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 나는 사는 것이 즐거워졌다”

“(중략) / 양수가 터지고 45일이 지나서 / (중략) / 지능이 떨어져 / 3급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 글도 제대로 못 배웠었지만 / (중략) / 엄마, 매일 투정만 부려서 미안해요 / 그래도 / 내가 엄마 사랑하는 거 알지요”

필자는 모르는 한글이 없고, 편지는 물론 이렇게 칼럼도 쓴다. 은행 볼일도 잘 보지만 사는 것이 즐겁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나아준 엄마, 키워준 엄마가 따로 둘이나 있었고, 철인3종까지 해내는 건강한 몸이지만 두 어머니에게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중략) / 그 동안 당신을 앞세워 살아왔지만 /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 손과 발이 비틀어진 당신을 위해 / 이제는 애가 손과 발이 되어 주겠소”

“젊을 때는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중략) / 한글을 알아가니 머리가 환해집니다 / 머리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 (중략) /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지금입니다”

필자는 셋째를 낳고 구안와사가 와서 병원에 입원한 아내를 위해 매일 병원에 가는 것이 귀찮을 때도 많았다. 나중에 잘 살기 위해, 나중에 행복하기 위해 지금 아내에게 소홀했다. 과거의 힘든 시간을 회상하며 인생을 한탄하기도 했다. 40여 편의 시를 읽고, 어느 하나 빠뜨리고 싶지 않아 카메라에 담으면서 생각했다.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행복은 ‘지금, 여기’에서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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