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아들이 밤샘 작업을 마치고 밀린 휴가를 다녀오겠단다. 안쓰러운 마음에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태워다 줄게” 했더니 늘 사양하던 녀석도 “그럼 좋지요” 한다. 일을 마친 며느리를 중간에 태우고 합정역까지 가기로 했다. 아들은 핸드폰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로 자동차를 몰았다.

아들네가 내린 후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엄마, 내비게이션 꼭 켜고 가세요.” 엉뚱한 길로 들어서 헤매기 일쑤인 나에게 아들이 신신당부한다. “알았어!” 약속은 했지만, 내비게이션 켜는 게 망설여졌다. 가장 빠른 길을 선호하는 내비게이션은 좀 전에 지나온 내부순환로로 다시 안내할 게 뻔했다. 하지만 나는 전에 그 길을 운전하다 까닭 모를 어지럼증에 여러 번 시달렸다. 그런 까닭에 요즈음 내비게이션을 따르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이정표를 보니 쭉 직진하면 우리 집 방향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 네거리를 둘러보았다. 때마침 좌회전 표시와 함께 ‘동교동 길’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지름길이 아닐까? 호기심에 홀린 듯 핸들을 꺾었는데, 아차! 생판 낯선 표지판이 보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가다 보면 아는 길이 나타나겠지.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눌렀다.

모르는 길이라 직진을 고수했다. 멀리 ‘성산대교(안양)’가 눈앞에 보였다. 집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대교로 향하는 신호등에 초록 불이 들어왔다. 이어진 도로는 이제 피할 곳이 없었다. 

순간 알 수 없는 도발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던가! 팝콘처럼 웃음이 터졌다. 어디 한 번 이대로 쭉 달려가 볼까? 의도치는 않았지만 밀려오는 일탈의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 채 강변을 내달렸다. 창문을 내렸다. 시원한 강바람이 머리를 적셨다.

내비게이션 없이도 운전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의 내비게이션은 또 하나의 속박일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니 내 인생에도 그런 내비게이션이 있었다.

나는 말 잘 듣는 맏딸이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학교 공부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던 중 중학교 때 교내 배구선수로 뽑혔다. 우리 학교 배구부는 그때 전국에서 선두를 다투는 팀이었다. 당연히 기뻐할 줄 알았던 아버지가 펄펄 뛰며 반대하셨다. 공부가 최고라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고집을 부리셨다. 반년 동안의 실랑이 끝에 운동을 접고 말았다. 불쑥불쑥 그 시절이 떠오르면 가보지 못한 그 길이 못내 아쉬웠다. 나는 아버지가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고 취직을 했다. 첫 출근 날 아버지는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어깨를 펴라며 등을 툭툭 치셨다. 

결혼하자 시어머니는 길잡이를 자청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붙잡으려 날마다 종종대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눈칫밥을 먹었다. 김치부침개를 부쳐도, 육개장을 끓여도 뒤에서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시누이들이 고생한다며 티셔츠에 청바지, 빨간 구두를 선물했을 때 비로소 매운 시집살이 삼 년이 무사히 지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의 삶에 내가 스며들었다. 봄이면 장을 담그고, 여름이면 모시옷에 풀을 매겼다. 가을이면 항아리를 땅에 묻고 김장을 하였다. 겨울에는 동치미를 퍼다가 국수를 말았다.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한 걸음도 비켜날 수 없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척척 일을 해내시는 시어머니 지휘 아래 나는 늘 무능한 주부를 자처하며 살았다.

때때로 나는 목이 말랐다. 우연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집안일을 미루고 밖으로 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망설이는 나를 보고 시어머니는 “갈 데가 있으면 가야지, 여자라고 움츠러들지 마라, 너를 알아주는 데가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삶의 곡선마다 그 한마디를 기억했다.

자동차는 나의 직진 본능이 이끄는 대로 앞으로,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이정표가 부산을 가리켰다. 밤이 내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문득 시어머니의 말씀이 가슴을 충동이질 하다가, 일순 아버지의 고집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문득 ‘세상의 길을 걷다/길을 잃을 때/집을 떠올리면 된다’ 는 시구(詩句)가 떠올랐다. 돌이켜 보니 내 마음의 내비게이션은 끊임없이 집으로, 집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잠시나마 일탈을 꿈꾸었던 내 깜냥도 집이라는 중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구별에서 나는 그저 티끌보다 작은 생활의 범생이에 불과했다.

고민 끝에 내비게이션을 켰다. 활기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운전대가 집을 향해 돌아갔다. “곧 내부순환로 입구입니다. 안쪽 두 번째 차선으로 변경하시고 자연스럽게 진입하십시오.” 내비게이션이 이렇게까지 친절했었나? 무심히 흘려들었던 멘트가 귀에 쏙쏙 들어와 앉았다. 어려울 때 짠! 하고 나타나 무엇이든 척척 해결해 주는 인생의 멘토처럼 느껴졌다.

내부순환로의 고가를 가뿐하게 올랐다. 늘 꺼려왔던 이 구간도 상쾌하게 넘길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마저 일었다. 마의 곡선 구간이 나타났다. 헌데 아니나 다를까!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던 예의 공포증이 불쑥 되살아났다. 혹시나 했던 울렁증이 가시지 않았다. 내비게이션도 이 증상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차들의 빠른 속도에 숨이 막혔다. 내 차는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일반도로로 내려와야 했다. 경로를 이탈했다며 내비게이션은 자꾸만 ‘유턴하십시오.’를 연발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내비게이션을 켜는 것도, 켜지 않는 것도 정답은 아니었다. 내비게이션을 움직이는 것도, 멈추는 것도 바로 나였다. 궁극적인 답은 결국 내게 있었다. 나의 내비게이션이 환하게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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