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분이 뽀얗게 난 곶감을 한개씩 들고 먹으며 저녁 시간의 여유를 즐긴다. 추운 겨울을 추녀에 매달려 견뎌낸 곶감이다. 지난 봄 왕관을 닮은 꽃을 피우고 감이 맺혔다. 감꼭지에 매달려 여름을 나고 가을엔 성숙됐다. 볼에 연지 곤지를 바르고 발갛게 익어갔다. 각자 곶감과 홍시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겨울 내내 홍시를 담아두었던 단지는 텅 비었고 곶감만이 남아있다. 봄의 나른함으로 기쁨의 맛을 넘겨주고 있다. 다 먹고 난 감꼭지만 접시에 남아 바람에 흔린다.

따끈한 차로 하루를 정리해 본다. 감꼭지를 끓인 감꼭지 차다. 기침과 천식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진정 효과가 있다는 차다. 따끈하게 마시고 잠자리에 들면 하루 피로를 몰아내고 편한 밤을 보낼 수 있다. 마치 엄마의 젖꼭지를 빨며 새근새근 잠드는 아기처럼 편안한 잠자리를 즐길 수 있다.

수도꼭지가 생명의 물을 공급하듯이 감꼭지나 엄마의 젖꼭지는 감과 아기에게 생명을 이어주는 수도관 역할을 한다. 엄마 사랑의 생명수를 꼭지를 통해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예술적 감동의 맛을 먹고 자란 아기와 감은 건강하고 예쁘게 성장한다.

엄마의 젖꼭지는 많은 형제를 길러냈다. 태어난 순서대로 줄이어 젖을 빨고 그 에너지로 건강하게 성장했다. 엄마의 젖꼭지는 우는 아이도 달래주고 잠들게 하는 신비스러운 젖꼭지다. 젖꼭지를 통해 엄마와 아기를 이어주고, 소통하며 사랑을 전해주는 유일한 통로다. 아기의 성격을 완성 시키고 몸집을 키워준다. 면역력을 갖추고 있어 각종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기도 한다. 그런 모든 것들을 젖꼭지가 해준다.

엄마의 젖꼭지를 통해 많은 자식들이 성장했듯 감나무에 매달린 감꼭지들은 수 많은 감을 매달고 지켜주며 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모자라지도 않게 넘치지도 않게 적당량을 조절하며 알맞게 공급하여 예쁘고 맛스런 감으로 탄생 시킨다. 바라만 보아도 먹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엄마는 아기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도 지켜주듯 감꼭지도 감이 익어 단지 안에 저장되고 곶감으로 매달려도 끝까지 따라가 지켜주고 보살펴준다. 미처 수확하지 못한 감들은 잎이 떨어져 사라지고 빨간 감들만 매달려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때까지도 감꼭지는 애처롭게 감을 매달고 지켜주고 있다. 현 단계를 넘어 다음 단계까지 책임을 다하며 함께한다. 시집간 딸을 가슴에 품고 사는 친정엄마의 마음과 같은 것일 게다.

아침에 일어나 찻주전자를 바라본다. 텅 빈 주전자엔 감꼭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엄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입에 물려주던 엄마의 젖꼭지다. 그의 마지막 향기마저도 전해주고 떠난다. 할일을 마친 감꼭지가 만족감을 느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엄마의 웃음이다. 그러면서 작별을 고한다. 건강하게 살아가고, 감꼭지의 노력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아니 그런 눈빛이다. 조용히 주전자에서 꺼내들고 두엄 더미에 안장한다. 그의 생은 이로서 끝을 맺고 다음 생을 준비하라고 떠나보낸다. 그의 공은 잊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겠다고 약속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