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함께 여행하기로 한 세 친구 중 하나가 컨디션이 안 좋은 바람에 위약금을 물고 부득이 여행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아픈 친구를 두고 둘이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결정 짓는 과정에서 짧은 문자의 오해로 친구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문자를 보낸 사람의 의도와 받은 사람의 이해가 전혀 다른 내용이 되어버린 것이다. 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해 주던 시절, 집에 전화가 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우리 집 전화 번호를 친구들에게 알려 주는 게 소원이었다. 동네 이장 집에 있는 전화는 마을 공동의 전화기였다. 이장 집은 윗 담에 있었다. 누구네 집에 전화라도 오면 이장아저씨는 방송을 했다.

“ㅇㅇ집에 전화가 왔으니 얼른 와서 받으세요.”

흘러 나오는 방송 소리에 온 동네 사람들이 뉘 집에 무슨 전화가 왔는지 다 알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아랫 담에 있던 우리 집에 전화가 오면 전 속력으로 뛰어야했다. 나중에는 꾀를 내어 일단 방송 소리를 듣고 가서 기다리다 다시 전화를 받는 식으로 했다. 그 이후 집집마다 전화가 설치 되면서 전화기의 소중함은 차츰 퇴색되어 갔다. 문명의 편리함을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며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것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일명 삐삐라는호출기를 차고 다니다가 연락이라도 오면 공중전화에 줄을 서가며 통화를 했다. 동전이 가장 유용하게 쓰이던 시절이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남편과 연애를 하던시절 , 100원 짜리 동전을 손에 잔뜩 들고 DDD 공중전화에 붙어 딸깍 거리며 넘어가던 동전 소리를 들어가며 사랑을 키운 적도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개인이 손에 들고 다니는 전화가 나올 것이라는 뉴스에 ‘설마’ 했다.

하지만 정말로 오래지 않아 핸드백에 쏙 들어가는 전화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며 어디에서든 통화가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준다. 하지만 이면에는 감수해야 하는 반대 급부도 생기게 마련이다.

남편은 전자기기에 별로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또한 휴대전화의 구속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전화기 관리가 늘 소홀하다. 하지만 모든 소통이 휴대 전화로 연결되는 세상 이다 보니 이런 저런 트러블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급하게 연락 할 일이 있어 통화를 시도하면 전화기는 항상 꺼져있다. 문자라도 보내면 확인 하는 게 버릇이 안 되다 보니 묵묵부답에 속이 터지는 건 언제나 상대방이다. 이런 저런 일들로 다툰적도 여러 번 있었다.

몇 년 전, 명절을 보내고 남편은 바쁜 일이 있어 먼저 귀경을 하고 나 혼자 시골에 머물게 되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으시던 시아버님께서 저녁이 되면서 갑작스럽게 기력을 잃으시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위독해지셨다.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혼수상태에 빠지셨고 자식들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 이었다. 시간은 자정을 넘었고 집에 혼자 돌아간 남편은 당연히 전화기를 꺼 놓은 채 잠이 들었다. 식구들 각자가 전화기가 있다 보니 무용지물이 된 집 전화는 당연히 반납을 한 상태였다.

결국 아버님은 그 날 새벽에 돌아가시고 남편은 아버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채 다음 날이 되어서야 장례식장에 오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더 할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르고만 남편은 이후로 휴대전화를 더 혐오했다.

속도와 빠르기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다. 현실에 적응하든지 아님 도태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남편은 아직도 그 중간지점에서 행로를 찾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사소한 문장부호 하나, 띄어쓰기 하나에 따라 의도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달되는 문자 메시지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은 더디고 답답하더라도 목소리의 크기, 말의 억양에 따라 상대방의 마음까지 느낄 수 있는 통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오늘도 내 선택과 상관없이 불쑥불쑥 내 전화기로 날아드는 메시지가 10여통에 달한다. 휴대전화 속에서는 너무 많은 말들이 쉽게 내 뱉어지고 아무런 책임감 없이 묻혀진다. 우리는 그 속에서 상처 받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도 절대 그 편리함을 포기 할 수 없는 지독한 문명의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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