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충청매일] 전통적 관료사회에서 청렴도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불삼거(四不三拒)가 있다. 관료가 해서는 안 되는 사불로 첫째 부업을 가져서 안 된다. 둘째 재임 중에 땅을 사지 않는다. 셋째 집을 늘리지 않는다. 넷째 재임 중에 그 고을의 명물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풍수군수 윤석보(尹碩輔)는 고향에 두고 온 처가 생활이 궁핍하여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비단옷을 팔아 채소밭 한 뙈기를 샀다는 소식을 듣고 조정에 사표를 내고 돌아가서 땅을 물렸다고 한다.

관리로 있으면서 거절하여야 할 세 가지를 뜻하는 삼거에 첫째는 윗사람이나 세도가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고, 둘째는 청을 들어준 뒤에 답례를 거절하는 것이며, 셋째는 재임 중에 경조사의 부조를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합천군수 조오(趙悟)는 고을의 명물인 은어를 입에 대지 않았고, 기건(奇虔)은 제주 목사로 있으면서 전복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정치권의 갈등을 가지는 대부분 문제는 관료사회의 청렴도와 연계된 것이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성 접대 사건은 지역 토호세력과 관련하여 삼거의 청렴 규율을 지키지 못한 것에서 연유한다.

자유한국당의 장외 투쟁을 가져온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은 사불의 청렴기준과 연계된다. 자유한국당은 이 재판관의 45억6천만원의 재산 가운데 35억원대 주식 소유를 국민의 눈높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고 있다. 이 국민의 눈높이는 청와대의 합법적인 인사검증 기준과는 분명 다르다.

우리 사회에는 공직자가 상속에 의하지 않고 재산이 많다고 하면 공직자로서의 권력이나 정보를 이용하여 부당하게 축적한 것처럼 인식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 재판관 재산 45억6천만원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분명 높은 수치이다. 또한, 200% 이상의 주식 수익률은 주식 전문가도 달성하기 어려운 수익이다.

도둑질해서 부자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부자가 반드시 도둑은 아니다. 똑같이 공직자가 재산이 많다고 반드시 비난받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인사청문회는 의혹을 제기하는 곳이 아니라 의혹을 입증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이 재판관에 대하여 입증하지 못한 의혹을 장외투쟁으로 입증하겠다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세월이 변했는데 사불삼거를 인사 기준으로 삼으라고 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사불삼거가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올바른 생각은 아니다.

이 헌법재판관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 아쉬운 것은 이 재판관이 국민의 눈높이보다 많이 가진 재산 가운데 1억~2억원이라도 자신과 같은 후배 지방대학생을 위해 기부했거나 소외집단과 함께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을 보였다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100억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더라도 박수를 받으면서 헌법재판관이 되었을 것이다.

돈을 사불삼거하며 벌어서 정승처럼 쓰지는 못하는 시절이기는 하나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은 쓸 수는 있지 않은가. 그러한 정승이라도 관직에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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