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청주시 흥덕구청 지적팀장

 

[충청매일] 어느덧 내 나이 쉰으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40대의 마지막인데 기분이 이상하지 않느냐 또는 우울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는 나이 드는 게 좋아.”

결혼 후 아이 둘을 낳고 맞벌이 부부로 생활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 둘을 챙겨서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사무실에 출근을 하고 나면 아침임에도 기진맥진해 피로가 몰려오기 일쑤였다. 아이 둘을 사무실로 데려와 김밥으로 대충 때우고 함께 늦은 퇴근을 하는 날도 많았다. 작은 아이가 사무실 의자에서 잠이 들어버릴 때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니 작은 아이가 거실에 있는 러닝머신 위에 우산을 펼쳐놓고 그 안에 잠들어 있었다. 아마도 햇빛이 눈부셔서 우산으로 가려놨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고 아프던지,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맞벌이 부부라면 나와 비슷한 경험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마치 전쟁 같았던 날들이 지나고 이젠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걸 보면 뿌듯하고 감사한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정신없이 40대 후반까지 달려왔던 것 같다.

직장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쫓기듯 살아오다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아이들에게 내 손길이 덜 필요하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라는 존재에 관심을 쏟게 됐다.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아져서 지금은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알지 못했던 재능(?)도 알게 되고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생겨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됐다.

나에게 나이는 군인의 계급장과 같다. 계급장이 올라갈수록 나에게 쌓여지는 연륜이 뿌듯하게 느껴진다. 그 계급장 안에는 좌절과 실패, 보람과 성공,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들어있다.

오늘도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연륜의 계급장을 위해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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