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9세기,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가 등장할 때까지 대륙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천하는 바야흐로 혼란의 소용돌이였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각축전을 벌인 이 시기를 오대십국이라 부른다. 그중 형남(荊南)은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지역으로 고계흥이 창업한 작은 나라였다.

사람 팔자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젊어서 고계흥은 상인 밑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이었다. 그러다가 당나라가 위태로워지자, 화북 제일의 실력자 주전충의 군대에 자원입대하였다. 주전충을 따라 여러 곳을 누비면서 그 성실성을 인정받아 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어 주전충이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후량을 건국하자, 고계흥은 졸지에 수직상승하여 형남절도사에 올랐다.

얼마 후 주전충이 사망하였다. 이때 고계흥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였다.

“천하가 혼란스러운데 내가 욕심을 좀 낸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고계흥은 자신의 군대를 이용해 형남을 비롯한 주요 지역 세 곳을 차지하고 스스로 군주에 올랐다. 그 무렵 후당이 강성해지자 고계흥은 몸을 낮춰 신하를 자청하였고, 이어 동쪽의 오나라가 강성해지자 다시 오의 신하를 자청하였다. 형남은 어느 나라보다 안정되게 나라의 기틀을 갖추어 나갔다.

고계흥이 죽고 장남 고종회가 뒤를 이었다. 고종회가 죽고 삼남 고보융이 뒤를 이었다. 고보융이 죽고 고종회의 10남 고보욱이 군주의 지위를 이었다. 이전에 고종회는 자신의 막내아들 보욱을 무척 총애하였다. 보욱이 원하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보욱은 버릇이 없고 안하무인으로 자랐다. 천하에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여길 정도였다. 게다가 보욱은 판단력이 부족했고 심지어 사람들이 자신에게 눈을 흘겨도 그것이 나쁜 감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정도였다. 보욱은 그저 방탕과 사치로 생을 즐겼다. 게다가 간신들을 가까이 하여 무의미한 토목공사를 실행하여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런 소문이 성 밖으로 알려지자, 차츰 민심이 떠나고 말았다. 형남의 백성들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이제 형남은 끝났다. 보욱이 하는 짓을 보니 나라가 곧 망하고 말 것이다!”

얼마 후 고보욱이 죽고, 고보융의 장남 고계충(高繼沖)이 지위를 이었다. 그런데 이 무렵 송나라 태조가 천하 통일을 국가목표로 내걸자 형남 지역이 가장 먼저 거론되었다. 송나라는 형남을 치려는 의도를 숨기고 남쪽 초나라를 공격하러 가는 길이니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였다. 고계충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이를 허락하였다. 하지만 송나라 군대는 영내를 통과하고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형남 도성으로 향했다. 송나라가 워낙 대국이라 고계충은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다. 비록 고계충은 다른 지역에서 벼슬하며 천수를 누리다 죽었지만, 형남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이는 ‘송사(宋史)’에 있는 고사이다.

만사휴의(萬事休矣)란 자식을 평소에 너무도 아껴 안하무인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즉 모든 일이 끝났다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옛날 왕조 시대에도 3대를 이어가는 왕위 집안이 없었다. 그만큼 3대를 잇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작금의 대기업 후세들의 작태를 보니 가관이 아니다. 집안의 몰락은 항상 망나니 후손에서 그 끝을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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