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서기] 해변의 여인
[물구나무 서기] 해변의 여인
  • 충청매일
  • 승인 2019.04.0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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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철 수필가

노래방기기 대형 화면에는 어느 바닷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걸친 여인이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파도가 철썩이는 해변을 걸어가는 낭만적인 모습이다.

사내는 내가 들어가도 본체만체 모니터만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노랫말이 흘러나오자 마이크를 잡고 따라 하기에 바쁘다. 나이는 40대 중반 쯤 되어보였다. 도우미는 불러놓고 자기 기분에 취해 노래하기에 바쁜 얼간이 같은 사람들을 한두 번 봐온 게 아니기에 나는 그저 사내 옆에 서서 가벼운 율동을 시작했다.

물위에 떠있는 황혼의 종이배

말없이 바라보는 해변의 여인아….

1절이 끝나고 전주곡이 흐른다. 나는 이 틈을 이용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강진주예요.”

내 이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하긴 노래방 도우미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누가 이런 곳에 와서 본명을 말하는 천치바보가 있을까만, 설령 내 본명을 말한다 해도 믿어줄 사람은 백에 하나도 드물 거다.

사내는 2절을 시작한다. 술이 그리 심하게 취한 것 같지는 않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황혼 빛에 물 들은 여인의 눈동자

조용히 들려오는 조개들의 옛이야기….

2절까지 부른 사내가 잠시 쉬는가 싶었는데 다시 ‘해변의 여인’ 전주곡이 흐른다.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짓인가. 두고 볼 수밖에. 이번에도 사내는 2절까지 부른 다음에야 내게 시선을 준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노래에 취해 있었나 봐요. 노래 한 곡 골라 봐요.”

요즘은 한 물 갔지만 몇 년 전 유행하던 ‘안동역에서’를 선곡했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 내내 사내는 꼿꼿하게 서서 그저 의무적으로 가볍게 손뼉을 치는 것 외엔 다른 짓은 않는다. 특이한 사람이다. 흔히 사내들이란 우리 도우미를 가지고 놀아도 되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대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사내를 뿌리치다 바로 퇴장을 당하는 수모도 겪었지만, 가난이 죄라고 이제 술 취한 사내를 어느 정도 구스를 줄도 알고 적당히 피해가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무슨 노래하실래요?”

내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는 이미 선곡을 마친 상태였다. 화면에 다시 ‘해변의 여인’ 제목이 흐르고 전주곡이 울려 퍼진다. 벌써 세 번째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내가 괴이쩍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그랬다. 이 경우 대부분 현문(賢問)에 우답(愚答) 정도로 대답하는 게 사내들의 공통된 심사이기도해서 그냥 보고 즐기는 편이 훨씬 속편하다.

그렇게 몇 곡이나 더 불렀을까.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주인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쟁반에 맥주 두 캔과 음료수 한 병 그리고 새우깡이 담겨져 있었다. 미리 시켜놓은 듯 했다.

“강진주 씨! 음료수 한 잔 하세요.”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주인 언니의 눈이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린다. 사내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보기 드물게 존댓말을 썼다. 흔치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사내의 입성이 그리 깔끔해 보이지도 않았다. 모니터에는 ‘선곡하세요.’라는 문구가 계속 흐르고 모처럼 조용하니까 오히려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알기는요. 그런데 ‘해변의 여인’ 노래를 무척 좋아하시네요?”

“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갈 때 까지 저 노래 한곡밖에 부르지 않아.”

묻지도 않았는데 주인 언니가 다시 끼어들었다. 사내는 이곳을 한두 번 이용한 게 아닌 듯 했다.

“아는 노래가 ‘해변의 여인’ 뿐인가 봐!”

주인 언니의 질책 비슷한 말에도 사내는 긍정도 부정도 않는다. 나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묻는다 해도 대답할 것 같지 않아서 그만 두었다.

“다시 ‘해변의 여인’ 선곡해 드릴까요?”

사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 일어선 사내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르는 모습이 애잔하다 못해 측은해 보이기까지 하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토록 절절하게 ‘해변의 여인’ 노래를 부르는 것 일까?

이 노래 ‘해변의 여인’을 작사 작곡 한 박성규씨는 1969년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와 오아시스레코드회사에 전속작곡가로 취업했지만, 무명의 설움을 꽤 오랜 세월 보내야했다. 회사에서 야유회를 춘천 남이섬으로 갔을 때였다. 강 건너 잔디밭에 긴 머리를 하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여인을 보고 악상을 떠올려 ‘호수의 여인’이라는 곡과 가사를 만들었다가 나중에 ‘해변의 여인’이 더 대중적일 것 같아서 고쳐 발표했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사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무슨 시련을 당했는지 몰라도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계속해서 한 가지 노래만을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어도 다분히 있어보였다. 떠나간 여인을 그토록 애절하게 그린다고 그 여인이 돌아온다는 보장이라도 있단 말인가. 바보 같으니. 나는 사내의 노래가 끝나기 전에 ‘섬마을 선생님’노래를 선곡해놓고 있다가 그 노래를 불렀다. 사내는 별 반응이 없다.

“좀 쉬었다 할까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내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먼저 의자에 앉는다.

“왜 저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세요?”

“그냥 좋아해요. 저 노래를 부르면 누나 손을 잡고 남이섬을 거닐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해요.”

“남이섬? 연상의 여인? 진주 씨?”

“….”

“왜, 헤어졌어요?”

“누나가 보고 싶을 땐 남이섬으로 달려가곤 하지요.”

정말 현문우답이었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남이섬이 어디에 있어요? 나도 남이섬 가보고 싶다.”

“그래요. 마침 내일이 일요일이어서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요?”

나는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사내의 명함을 받았다. 명함에는 모(某)전자회사 자재과장‘서길동’으로 표기되어있었다. 사내는 차를 가지고 우리 집 근처인 마장동까지 데리러 오겠단다.

흔히 취중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흔치 않다. 더구나 노래방 도우미와 손님 간에 한 약속임에랴. 새벽 세시 까지 영업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요란하게 벨이 울렸다. 어제 그 ‘해변의 여인’을 부르던 사내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들려왔다. 진짜 전화번호를 알려준 내 잘못이었다. 사내가 너무 고지식하고 측은하게 느껴졌다. 장난이 지나치면 또 한 번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안해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그제야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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