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곱창전골을 맛있게 하는 집도 있고요. 월남 쌈이 맛있는 집도 있어요. 점심시간에는 줄을 서서 먹을 정도예요. 어디로 할까요? 의견들 주세요.”

이틀 후에 있을 모임 장소에 대한 의견을 묻는 K의 단톡방 메세지이다.

20년 가까이 만나온 친구들이고 어려운 시절 한 직장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한 사람들이기에 비록 2개월에 한 번 하는 만남이지만 가급적 일이 있어도 참석하려 노력한다.

8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 둘 씩 빠져나가고 단 네 명만이 남았다. 그 중에는 회원들 간에 불화로 인해 나간 경우도 있고 지방으로 이사를 해서 부득이하게 탈퇴한 경우도 있었다.

모두가 마음이 잘 맞아 오랜 세월 관계를 이어 왔다기보다는 그냥 함께한 세월이 아쉬워 이어나가고 있다는 느낌도 한 부분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 모임에 대한 최대한의 성의들이 있어 만남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한나절, 색다른 음식과 분위기를 누리며 찌든 가사노동에서 하루쯤 벗어나 망중한을 즐기는 것이 아줌마 모임의 줄거리이다.

“난 일을 시작해서 참석 못합니다. 미안합니다.”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Y의 메시지이다. 총무는 2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맡기로 했다. 날짜도 정하고 장소도 물색하고 모임 계획도 짜고 회비 관리도 한다. 그런데 Y가 총무를 맡고 두 명의 회원이 탈퇴를 했다. 거기에는 직간접적으로 Y가 원인 제공을 했다. 절이 싫어 중이 떠난 격이다.

“헐”

Y의 메시지에 대한 나의 답이다.

표현 그대로 어이가 없었다.

아줌마 모임이란 것이 먹고 사는 것과 직결 되는 게 아니다 보니 고무줄식이다. 한 사람이라도 불편하면 안 되고 모두가 편안한 시간을 잡다보니 늘였다 줄였다 언제나 고정된 날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이틀을 앞두고 시간. 날짜 조정에 대한 어떤 부탁이나 양해를 구하는 멘트도 없이 ‘난 못나가니 그렇게 알아라’는 식의 통보 메시지에 기분이 상했다.

장소 물색하느라 이곳저곳 검색에 여념이 없던 K나 날짜 맞추느라 이런저런 사소한 볼일들을 앞뒤로 조정하느라 신경이 쓰였던 나나, L은 안중에도 없는 행동이란 생각에 화가 났다.

사실 Y에 대한 감정은 예전부터 별로였다. 이번일 하나로 화가 치민 것은 아니었다.

Y는 모든 면에 있어 철저히 자기위주다.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나 양보는 1도 없는 사람이다. 더 문제는 그러한 본인의 행동이 뭐가 잘못 됐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본인에게 어떤 사정이 생겼을 때 날짜나 시간을 바꾸는 것의 여부를 물어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Y의 이런 경우 없는 행동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이 싫은 사람들은 하나둘 모임에서 탈퇴를 하고 미련스럽게 참고 인내해주는 네 사람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한계에 달했다. 그동안 경우 없이 행동했던 몇몇의 일들에 내 생각을 전달하고 단톡방을 나오며 Y와의 20년 세월을 정리했다.

시원섭섭했다.

한편으론 흑백논리가 너무 분명한 처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더 이상 미련스럽게 불편한 관계에 얽매여 마음속에 화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Y를 한때 알고 지냈던 수많은 인연 중의 하나로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홀가분해졌다.

‘비생산적인 인간관계는 정리하자.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관계도 정리하자 사랑이란 이름으로 이성에게 구속 되지 말자.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피하자. 그런 사람은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들을 상대하면서 욕하는 것보다 아예 어울리지 않는 편이 낫다.’ ‘심플하게 살기 (도미니크 로로 지음)’

짧지 않은 삶 동안 우리는 많은 관계들을 맺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만남들을 불교에서는 겁의 인연으로 설명하며 소중히 한다.

하지만 그 인연들이 소중한 만큼 인간으로 선택받은 내 삶의 평화를 지키는 일 또한 더욱 소중한 일이다.

‘그래 이제부터는 심플하게 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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