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기원전 200년, 한(漢)나라 유방의 부하인 한신(韓信)이 군대를 이끌고 조나라를 공격하였다. 이때 조나라 장군 이좌거가 재상 진여에게 아뢰었다.

“한신의 군대는 천리 밖에서 군량미를 보급 받아야 하는 형편이라 분명 후미에 군량미가 있을 겁니다. 제게 병사 3만 명만 주신다면 그들의 식량수송대를 끊어놓겠습니다. 그때 재상께서는 한나라 군대와 대치만 하십시오. 그러면 적들은 싸울 수도 없고 후퇴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다 식량이 떨어지면 아마 열흘도 못가서 적의 병사들이 한신의 머리를 갖다 바칠 겁니다.”

이에 조나라 재상 진여가 대답했다.

“한신의 병력은 고작 수만 명일 뿐이오. 또한 천리 먼 곳에서 왔으니 지쳤을 것이오. 우리가 먼저 공격하면 분명 이길 것이오. 장군은 내 말을 따르시오.”

새벽에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나아갔다. 그러자 조나라 군대가 성문을 열고 나와 공격하였다. 이에 한신이 거짓으로 패한 척하고 달아났다. 조나라 군대는 성을 비워놓고 모두 쫓아 나와 한신을 뒤쫓았다. 이틈에 한신의 기습 부대가 조나라 성으로 들어가 조나라 깃발을 다 뽑아버리고 한나라 붉은 깃발을 세웠다. 조나라 군대가 되돌아가려 했으나 성안이 온통 붉은 깃발뿐이었다. 놀란 조나라 군대는 왕이 이미 항복한 줄 알고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조나라 군대는 대혼란에 쌓여 결국 패하고 말았다. 이에 한신이 말했다.

“조나라 장군 이좌거를 죽여서는 안 된다. 그를 사로 잡아오도록 하라!”

그러자 병사들이 이좌거를 결박하여 데려왔다. 한신이 그 포박을 풀어주고 예를 갖춰 연나라와 제나라를 치는 병법을 물었다. 이에 이좌거가 대답했다.

“패배한 장수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의 시도 중에 한 번의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의 시도 중에 한 번은 맞힐 수 있다고 했으니 제가 부족하지만 진정으로 아뢰겠습니다. 지금 천하 백성들은 피로하고 병사들은 지쳐있는데 장군께서 또 전쟁을 한다고 하시면 아마 이길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연나라와 제나라가 연합해 방비를 강화하고, 항우와의 싸움은 남아있는 상태이니 상황이 장군에게 극히 불리합니다. 먼저 싸움을 멈추고 백성과 병사들을 쉬게 해야 합니다. 전쟁의 고아와 과부들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야 합니다.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잘 대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연나라가 그 소문을 듣고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 소식을 제나라에 알리면 제나라 역시 복종하고 말 것입니다.”

한신이 이좌거의 제안대로 연나라와 제나라에 사자를 보냈다. 그러자 두 나라는 한신의 소문을 익히 들어 바로 항복하고 말았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천려일실(千慮一失)이란 천 가지 시도 중에 한 가지 실책이란 뜻이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한 일도 때로는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수는 인생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사람이 잘나고 못난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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