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음성 동성초등학교 교사

[충청매일] 학기 초 교실에서 하는 중요한 작업 중 하나는 ‘학급규칙 정하기’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를 되돌아보면 과연 우리 교실에 학급규칙이 있었나 싶다. 그렇다고 규칙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는데 왜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그땐 아마도 학급규칙이라는 말보다 그저 ‘선생님 말씀’이라는 말이 통용됐던 것 같다. ‘선생님의 말씀’이 곧 그 반의 ‘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졌다.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의 의견이 있고 그들의 의견이 존중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나 역시 담임교사가 된 그 날부터 학급의 규칙은 내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 정하도록 기회를 줬다. 방법은 이렇다. 먼저 자신이 생각하는 학급의 규칙을 10가지 쓴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3가지를 발표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끼리 겹치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규칙을 정하다 보면 우리 반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행동을 하는 친구를 힘들어하는지 알게 된다. 또한, 학생들은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규칙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집단 지성의 힘’으로 ‘공동의 선’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규칙 정하기에 앞서 규칙의 중요성을 말해 줬다.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통 규칙을 예로 들어 설명했고 그동안 지냈던 학급이 가진 좋은 규칙과 꼭 필요했다고 생각하는 규칙을 엄선하도록 했다. 아이들이 규칙을 생각하는 동안 나 역시 나 스스로가 우리 교실을 위해 해야 할 규칙을 10가지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 칭찬하기’, ‘모든 아이를 동등하게 대하기’, ‘물은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기’, ‘많이 웃기’, ‘수업 준비 열심히 하기’, ‘좋은 책 읽어주기’…. 규칙이라기보다는 나의 다짐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마침내 집단 지성에 의한 우리 반의 규칙이 탄생했다. 아이들은 38가지에 이르는 규칙을 만들었고 자신들이 만든 규칙의 가짓수에 놀라는 모양새였다. ‘우와 이걸 다 지킬 수 있을까?’ 하는 표정이었다. 그때 화룡점정을 찍는 어린이가 나타났다.

“선생님, 마지막 규칙이 생각났어요!”

“뭔데?”

“39번 규칙! 위에 있는 규칙을 다 지키기!”

“오, 노! 안 돼!!”

아이들이 장난에 찬 비명을 질렀다.

“얘들아, 그럼 너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규칙을 10가지로 정리해 보자.”

38개의 규칙을 다시 정리해 보니 아이들이 정한 규칙은 크게 4가지 범주로 좋은 친구 관계 유지하기, 수업 시간 집중하기, 학교와 교실 내에서 안전한 생활하기, 정리 정돈하기로 요약되었다. 아이들은 흔쾌히 짧게 정리한 10개의 규칙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사실상 ‘조삼모사’인 학급규칙임에도 가짓수가 줄어 마음의 짐을 던 듯했다. 나 역시 내가 지키고 싶은 규칙을 학생들 앞에서 공개했다. 그렇게 공표를 하고 나니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지고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우리 반은 이렇게 출발하기로 했다. 서로의 다짐이 올 한 해 잘 실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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