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한국의 활쏘기’(1999)와 ‘이야기 활 풍속사’(2000)가 나온 뒤로 세월이 흘렀습니다. 활터의 풍속은 제가 생각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변화되었고, 많은 것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갔습니다. 대신에 새로운 제도들이 생기고 고증 없는 주장들이 나타나서 활터에서 사이비 예절이나 논리로 자리 잡아갔습니다. 예를 들면 ‘정간’이나 ‘궁도’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해방 전에는 있지도 않던 정간이 나타나서 얼토당토않게 활을 쏘는 한량을 활터에서 쫓아내는 노릇을 했습니다. 저 자신 이런 일들에 모순을 느껴 정간을 도끼로 찍어낸 뒤 활터를 떠났지만, 청주 우암정에서 멀쩡히 활을 쏘던 한 한량을 충주의 한 활터에서 정간배례를 조건으로 달아서 이적서류를 받아주지 않는 바람에 결국 고영무 접장은 활을 그만 두었습니다. 정간이라는 망령이 이미 활을 쏘는 한량까지 활터 밖으로 몰아낸 것입니다. 정간이 앞으로 활터에서 어떤 짓을 벌일 것인가를 상징처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정간은 이미 한량의 생사여탈권을 쥔 귀신으로 등극하여 순진한 신사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불호령을 내리는 중입니다. 이런 사실 자체가 정간이 활터에 있어서는 안 될 것임을 반증하는 것인데, 모두들 이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활에 대한 오해가 깊습니다. 활은 과녁 맞추는 기능이 있지만, 그건 오락에 불과한 일입니다. 활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건강 즉 양생입니다. 전통 사법은 그를 위해 만들어진 사법이고 『조선의 궁술』은 체육을 위한 사법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활터에서 유행하는 사법은 양궁의 영향을 받은, 그래서 우리 활쏘기의 전통과는 거리가 먼 ‘반깍지 사법’으로, 건강을 해치는 사법입니다. ‘한국의 활쏘기’ 이후,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를 증명하려면 수많은 세월이 걸립니다. 그렇지만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나온 책이 ‘활쏘기의 나침반’(2010)입니다.

이 책은 우리의 전통 활쏘기를 오락으로 보면 안 되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 활은 양생의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수단으로 1929년에 정리된 책이 바로 『조선의 궁술』입니다. 따라서 우리 활을 제대로 계승하려면 과녁 맞히는 일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전통 사법인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이해되고 선결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정리한 책입니다. 오락으로 치닫는 국궁계에, 그 방향만이 아니라 양생이라는 중요한 줄기가 있음을 확인하고 알리려고 쓴 책입니다.

‘한국의 활쏘기’는 우리 활에 관한 종합 안내서를 구상하고 쓴 책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여 544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 되었습니다. 우리 활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으려고 했고, 그래서 우리 활의 입문서 노릇을 그동안 톡톡히 해왔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 활이 지금까지 어떤 형식과 모습으로 자리 잡고 이루어져왔나를 정리한 것입니다. 내용의 방향을 보며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는 모습을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저의 생각이 전혀 끼어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가 쓰기는 했지만, 제 생각을 쓴 것이 아니라, 구사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소개한 것이었습니다.

‘활쏘기의 나침반’은 활을 바라보는 저의 생각을 처음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즉 활을 양생의 술법으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고 그런 방향에서 우리의 전통 활쏘기를 조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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