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영 수필가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 터를 가려서 /깊이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손가락 한 마디’ 한하운(1920~75)

천형이라 불렸던 질병에 의해 말초 신경이 마비되어가면서 어느 순간 신체의 일부분이 뚝 떨어져 내릴 때의 절망감과 고통을 대변할 적절한 언어는 없다. 언제 어느 순간 또 다른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그들에게 뼈 한 조각 살 한 점의 의미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2016년 7월 SBS에서 방영한 다큐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본 후 꼭 한번 와 보고 싶었던 이곳 소록도. 아직은 봄의 초입인데도 바람 끝이 따스하다. 상흔으로 얼룩진 이들의 이야기를 품어 안고 가만가만 뒤채는 바다, 해안선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는 송림이 무심한 듯 여린 바람에 흔들리며 길손을 맞이한다. 이 아름다운 해안길이 함께 살수 없었던 한센인부모와 아이들이 한 달에 한번 만나던 아픈 역사의 현장인 수탄장이 있었던 길이라 한다. 바람으로도 전염된다고 믿었던 당시였기에 혹여 전염될까봐서 부모는 바람을 맞는 자리에 자식은 바람을 등지는 자리에 서서 서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시리게 다가온다.

아이가 태어나 부모와 생활하는 5년 동안 전염이 되지 않아 음성이면 보호소로, 양성이면 부모와 함께 살 수 있었기에 어떤 아이들은 부모가 그리워 차라리 병에 걸리길 소원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명치끝이 아리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음성이면 헤어져야하는 아픔에 가슴을 치며 울었고 양성이면 한센인으로 살아야하는 자식의 고통을 알기에 벽을 들이 받으며 울었다고 하니 그 고통의 깊이를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송림을 사이에 두고 펼쳐진 길을 걷다보니 스물다섯 피 끓는 청춘에 타의(他意)에 의해 정관수술을 받으며, 꿈꾸던 사랑이 무참히 사리지는,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꿈이 사라지는 통한을 부르짖은 ‘이동’의 시비(詩碑) ‘단종대’. 해방이 되었으나 여전히 굶주림과 박해에 견디다 못해 자치권을 부르짖다 무참히 학살된 84인의 위령탑이 인권유린의 아픈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이곳에 오면 꼭 돌아보아야 한다는 곳. 감금실과 검시(檢屍)실이다. 내부에 들어서니 서늘하면서도 칙칙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아 섬뜩하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감금되어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했던 감금실의 내부를 살펴보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변실과 주거시설이 온전히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이하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앞에 망연자실 했다.

한센인은 세 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천형이라 불리던 병이 발발했을 때, 한으로 점철된 생을 마감했을 때,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야 한다는 이유로 시신을 해부한 뒤 화장을 당했을 때를 일컫는 말이라 한다. 감금 실 옆에 있는 검시(檢屍)실 내부의 모습이 그 잔혹했던 현장을 대변해주고 있다. 검푸른 세멘바닥 중앙에 사람 하나가 누울 수 있는 흰 사각의 링이 있고 그 아래로 수술 시 배출되는 혈액을 흘려보내기 위한 수도꼭지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수술대 위에서 시신의 해부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 온전히 말살된 상태에서 정관 수술과 낙태수술이 행해졌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죽은 자의 영혼과, 살아 있으면서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아야 했던 이들의 부르짖음으로 얼룩졌을까. 잔디가 곱게 깔린 공원에 있는 정원수들에 눈길이 머문다. 정제된 아름다움이 환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만들어낸 현장이라는 것을 순간 잊게 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 공원이 한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게다. 공원 한쪽에 질병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한센인들의 소망이 서려 있는 구나탑이 우뚝 서 있다.

탑 하단에 쓰인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귀가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벽돌공장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이탑은 병원운영비의 대부분을 전쟁 비용으로 상납했던 터라 필요로 하는 500여동의 건물을 짓기 위해 질병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노역을 감당해야 했던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스도의 위로가 그들에게 함께하길 기도한다.

이곳 국립소록도병원은 1916년 일본인들에 의해 자혜의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후 국립소록도갱생원(1934년) 국립소록도병원(1982년)으로 명칭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느 해설사의 해설에 의하면 신의 후손이 통치하는 나라에 천형을 받아 더러운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살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흩어져 있는 한센인을 모아 탈출이 어려운 오지인 이 섬에 감금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설립의 취지가 불손했으니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센병이란 어떤 병인가. 대한 전염병협회의 발표에 의하면 전염예방법상 가장 낮은 단계인 3급 전염병으로 일반인의 95% 이상이 자연 항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병의 전염은 환자와의 신체접촉에 의해 감염되며 초기에 치료하면 99.9%로가 완치되는 병이나 치료의시기를 놓치면 말초신경을 마비시켜 신체의 일부분이 훼손되는 징후를 남기는 병이다. 이곳 소록도를 비롯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88개 정착촌에 살고 있는 2세들 가운데 한센병에 전염된 환자는 1명도 없다고 한다.

환자라는 이유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온갖 박해에 시달리며 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이들의 눈물로 얼룩진 섬 소록도. 소록도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내 안에,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편견과 무지로부터 벗어나 포용과 상생이 공존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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