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시어머니의 방문을 여니 방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려있고, 옷가지는 널브러져 있었다.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어머니는 무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 이게 어디 갔지?”

문갑을 열어젖히더니, 경대 밑도 샅샅이 훑어보셨다. 

“뭐하셔요?” 다가서니

“아니야 암 것도 아니야. 이쪽으로 가까이 오지 마요.”

손사래를 치시는데 약지에 늘 있던 반지가 안 보였다.

“어머니, 반지 또 잃어버리셨어요?”

“어? 언니가 그걸 어떻게 아셔?”

어머니는 동작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가만 계셔요. 제가 찾아드릴게요.”

이불을 들춰보았다. 솔기까지 훑었으나 없었다. 급기야 어머니의 베갯잇까지 탈탈 털었다. 툭! 반지가 또르르 굴러 나왔다.

아버님이 무슨 기념일 날 해주었다는, 큐빅 다이아몬드 5개가 쪼르륵 박힌 금반지, 애지중지하시던 그 반지가 그즈음 날마다 어머니와 숨바꼭질을 시작했다.

물건을 당신이 숨기고 도둑맞았다며 온 집안을 뒤지고, 남을 의심하는 언행이 어머니의 처음 치매 증상이었다. 며느리조차 의심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숨긴 물건 찾기에 이골이 났다. 어머니 딴엔 대단히 중요한 물건들이 차례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주민등록증과 은행 통장은 장독 항아리에서 들어있었다. 프라이팬 밑에 깔아 두었던  빳빳한 지폐를 찾기도 했다. 재봉틀에는 동전 한 꾸러미가 들어있었다. 옷가지며 이불 속에 숨긴 건 그나마 찾기 쉬웠다. 반찬통 뚜껑만 따로 분리하여 꽁꽁 싸매둔 걸 창고에서 발견했을 땐 기가 막혔다. 보물찾기 놀이가 따로 없었다.  

데이케어센터에 다닐 때는 옆에 앉은 할머니에게 이 반지는 우리 할아범이 해 준 거고, 이 시계는 미국 가서 산 거유 하며 자랑하셨다. 다른 할머니들도 색색가지의 반지를 차고 계셨다. 기죽지 않으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하루는 시계를, 또 어느 날은 반지를 잃어버리고 오셨다. 다행히 복지사가 챙겨 두었다가 전해주며 집에 두라 권했다. 일일이 챙겨주는 복지사가 고맙고 미안했다. 저리 소중하게 여기는 반지인데 잃어버리면 상실감이 클 것 같았다. 어머니께 반지는 달랑 이것 하나였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반지를 빼는 게 아니었다. 살이 빠져 손가락이 가늘어지자 반지가 자꾸 빠져나오는 거였다. 불안해진 어머니는 누가 반지를 가져갈까봐 자신도 모르게 날마다 다른 곳에 숨기셨다. 나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예쁜 상자를 보여드리며 “어머니 여기에 반지를 넣어 두면 잃어버리지 않고 좋겠지요? 이렇게 상자를 머리맡에 둘께요. 아셨지요? 여기에 두고 다니셔요?” 고개를 끄떡끄떡하셨다. 며칠 동안은 여전히 “내 반지 어디에 있어요?” 하고 찾으셨다. 하지만 한두 달이 지나자 반지를 완전히 잊으신 듯했다. 반지는 문갑 속에서 오랫동안 잠을 자게 되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신 후 방치했던 문갑을 열었다. 반지 상자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문득 어머니께 반지를 끼워드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반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반지는 스르르 흘러내렸다. 어머니 마른 손가락 어디에도 반지는 맞지 않았다. 즐겁게 해드릴 요량이었는데 마음이 짠했다. 어머니 손을 쓰다듬고 있으려니 옛일이 다 허사처럼 느껴졌다.

순간 어머니는 반지를 내 손가락에 밀어 넣으셨다. 본디 어머니보다 내 손가락은 많이 굵었다. 어머니의 반지는 늘 손가락 끝에 걸려 들어가지 않곤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치 요술이라도 부린 듯 내 손가락에 딱 들어맞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랐다. 지켜보던 남편과 아이들도 놀랐다. 함께한 세월 동안 어느새 마음을 넘어 몸도 같아진 걸까?

“언니 가져요. 이제부터 이건 언니 거에요. 내가 주는 거니 잃어버리지 말아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내 손을 힘 있게 잡았다.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반지는 이제 어머니가 살아생전 나에게 남기신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나는 평소 장신구를 애용하지 않지만, 마음이 힘들 때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반지를 찾아서 낀다.

어머니의 손때가 남아있는, 생활의 흠집투성이에 빛바랜 반지지만 언제나 든든하게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때때로 나는 반지를 만지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다. 그곳에서 평안하시냐고, 그리고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우리는 덕분에 잘살고 있다고, 많이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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