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충청매일 충청매일] 인간은 100이란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100이 인간의 한계를 표현하고 완성과 최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100은 변화를 의미한다. 역사책은 100년을 1세기로 표현하고 100년을 단위로 변화의 역사를 구분한다.

백세에도 왕성한 강연을 하고 계신 김형석 교수의 ‘백 년을 살아보니’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순 자산이나 부가 백만 단위의 통화를 초과하는 사람을 백만장자라고 해 부러워한다. 우리나라에 100년을 지속하고 있는 기업이 10개 미만이라고 하니 창업 100년은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는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사업을 추진하고,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사업이 1년 내내 계획돼 있다. 그러나 국민과 지역 주민의 관심을 보면 100이란 숫자가 무색하다.

3·1운동은 우리에게 국가라는 의미를 국민적으로 인식하도록 한 사건이다. 독립선언문은 우리가 독립된 나라인 것과 우리가 자주하는 국민인 것을 모든 나라에 알리고 있다.

100년 전 독립선언문은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나를 바로잡는 데 있을 뿐 결코 남을 헐뜯는 데 있지 아니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을 따라 자기 집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을 보면 그때와 다르지 않다. 국가의 존엄성은 점점 쇠퇴해 국가 최고기관인 대법원의 위상은 떨어지고, 일부 국회의원은 국가를 찾기 위한 5·18 민주항쟁과 촛불 혁명을 폄하하고, 국가의 상징인 공권력은 이데올로기와 목소리 큰 사람들에 의해 줄어들고 있다. 100년 전과 같이 한반도 문제는 우리의 자주적 목소리보다는 주변 국가의 목소리에 묻혀 있다. 그리고 100년 전 독립선언문이 이야기하듯이 지금도 우리는 함께하지 못하고 배타적 감정을 자극해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을 뿐이다.

독립선언문은 우리 민족의 진정한 자주독립을 위해 앞날의 협위를 없애고, 민족적 양심과 국가적 도의를 북돋워 기르고, 국민 각개 인격의 정당한 발전을 도모하고, 우리 자손에게 굴욕의 역사를 남기지 않고, 자손만대토록 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려면 변화하고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에게 3·1운동은 독립기념관에만 있고, 3·1운동의 정신은 역사책에서 사라지고, 3·1운동의 만세 소리는 기념식의 식순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제 3·1운동 100주년은 완성이 아닌 새로운 독립운동을 위한 변화의 시점이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독립선언문 공약 3장의 1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들의 이 운동은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으로서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로운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흐르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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