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언니! 언니! 빅뉴스야”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을 떠니?”

“글쎄 우리 회사에서는 독야청청하다고 소문난 독청(사내에서는 독야청청을 줄여서 그렇게 부른다)본부장이 뇌물을 받았데.”

“설마? 그 양반 성격을 몰라서 그러니?”

“아냐 언니! 어제 미전실에 근무하는 김 대리가 퇴근하다가 봤는데 경비원 모모(某某)씨가 보자기에 싼 물건을 건네주니까 조금 망설이는 것 같더니 받더래.”

“그럴 리가?”

“그 선물을 받아들고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짓더라는 거야. 어쩌면 그런 분의 선물을 양심의 가책도 없이 받아들여?”

“정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더니 그 꼴이네” 

“그래, 재작년에 부속실 미스 리가 향수 한 병 받았다가 독청 본부장에게 들켜 경위서 쓰고 된통 혼났잖아.”

“너무 심한 것 같아. 직원들 간에도 연말이나 명절 때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잖아. 그리고 신세 진 사람에게 인사하는 게 우리 미풍양속이기도 하고.”

너무 옭죄면 터진다고 하더니 그예 우려하던 일이 생기고 말았다. 누가 붙였는지 각 층 여자 화장실에 독청 본부장이 경비원 모모(某某) 씨로 부터 모종의 선물을 받았다는 것과 그것은 경비원 공채에서 특혜를 준 대가성일지도 모른다는 아리송한 내용이었다. 더 기막힌 것은 청렴결백을 주장하던 그의 진면목을 다시 검증해야 된다는 글도 각 층 여자 화장실에 나붙었기 때문이다. 그 글을 읽은 직원들은 독청 본부장의 성격을 잘 알기에 누가 음해성 글을 퍼트린 것이라며 최초 발설자를 찾아 처벌해야 된다며 이구동성 입을 모았다.

일이 이쯤 되면 당사자 독청 본부장이 모를 리 없고 충실한 그의 측근들이 그 사실을 충분히 고해 바쳤을 것이지만, 무슨 일인지 일언반구 대꾸조차 없다. 정작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남의 제사에 감 놔라 곶감 놔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일까 점차 사그라지던 불씨는, 경비원 모모(某某) 씨가 독청 본부장의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는 운전기사의 말이 퍼지면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 술 더 떠서 모모(某某) 씨는 독청 본부장의 고향 후배여서 경비원이 아닌 사무직원이 될 수도 있다는 구구한 억측까지 난무하기 시작했다.

기해년 새해를 일주일가량 앞둔 어느 날 선물보따리를 든 사람들이 오가는 청주 성안 길! 그 인파에 휩쓸려 어디론가 가고 있는 독청 본부장! 마음이 착잡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지나가고 싶지만 세상만사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지금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중이다. 직원들에게 자상하게 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독청 본부장은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대기업 중역이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그를 상사들은 눈여겨보았다가 적재적소에 쓰기 시작했다. 항상 동료들을 제치고 먼저 승진하는 행운까지 잦았다. 그러다보니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시기하는 동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자연 외톨이가 되어갔고 그의 머리는 자잘한 업무까지 챙기는 예민함을 보였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부정행위도 저질러서는 안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도 자리잡아갔다. 회사에서는 점심을 사겠다는 직원이 줄을 설 정도였고, 휴일이면 골프장으로 모시겠다는 사람이 귀찮아서 피해 다닐 지경이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일체 부정한 돈은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누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자신의 단골식당이 아니면 응하지 않았고, 칼국수나 된장찌개를 먹는 정도였다. 그것도 식당 주인에게 자신이 데리고 온 손님에게서는 절대 돈을 받지 못하게 한 사실이다. 물론 점심값은 그가 미리 맡겨놓은 돈으로 계산하니 식당 주인으로서는 손해 볼 일도 전혀 없었다.

지금은 김영란 법에 묶여 그렇지 전에는 명절 때가 되면 선물보따리가 돌아다니기 마련이었지만, 독청 본부장 부서에서는 그런 일은 눈을 씻고 보려고 해도 없었다. 직원이나 업자들이 선물을 싸들고 찾아오면 불이익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 다음부터는 공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하기 때문에 그의 성격을 잘 아는 사람들은 아예 명절이 가까워 오면 발길을 끊기도 했다.

그런데 딱 한번 예외가 있었다. 추석 전날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 나왔다가 돌아가는 그의 손에 동동주 한 병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경비원 모모(某某) 씨가 시골 어머님이 보낸 것이라며 건네준 것인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사내(社內) 일각에서는 그 일을 두고 김영란법을 위반했는지 조사해봐야 한다고 했지만, 워낙 강직한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그 누구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했다.  

경비원 모모(某某) 씨는 고향 친구의 동생이었다. 지금도 그 친구와는 1년에 한 번씩 만나면 밤새워 이야기를 하고 막걸리 한말을 다 마실 정도로 우정이 돈독한 사이이다. 처음 경비원 모모(某某) 씨가 정문에서 경례하는 모습을 보고는 적잖이 놀랐다. 반갑기는 했으나 내색 할 수가 없었다. 정당하게 공개채용에 응시하여 입사한 그와 자신이 아는 사이라는 게 알려지면 엉뚱한 소문이 만들어 질 수도 있고 그러면 그에게 혹여 불이익이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정말 우연의 일치였을까 경비원 모집에 응시하고 보니까 형 절친이 그곳 미래전략본부장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찾아가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경비원 모모(某某) 씨도 형 친구의 올곧은 성격을 잘 알기에 아무런 부탁이나 심지어는 단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

‘내가 너무 심했나?….’ 독청 본부장이 어금니를 잘근잘근 씹으며 용두사지 철당간을 막 돌아서려는 찰나였다.

“여러분 기해년 황금 돼지띠 해를 맞이하여 복 많이 받으시고 저금도 많이 하십시오. 여기 있는 돼지저금통을 무료로 나눠 드리겠사오니 필요하신 분은 하나씩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 바라보니 어느 금융기관에서 돼지저금통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나누어 주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저금통을 들어 얼굴에 대어보기도 하고 끌어안고 웃고 좋아한다. 그 옆에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까지 모여서서 저금통을 고르기도 하고 들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 저것이면 되겠구나.’

독청 본부장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른다.

“사장님! 이 돼지저금통은 하나씩만 가져가야 되나요?”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그래요.”

“아, 그러시다면 필요한 만큼 가져가세요.”

독청 본부장은 얼씨구나 좋아라하며 커다란 비닐봉지에 돼지저금통을 주섬주섬 담기 시작했다. 이튿날 전 직원들에게 돼지 저금통과 새해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랑하는 동료 여러분! 기해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한 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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