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어원 연구의 가장 큰 문제는 맥락 없이 자기 수준에서 뜻을 풀려고 하는 관성입니다. 예컨대 ‘소나기’의 경우 비가 올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소를 걸고 내기를 했다는 것에서 온 말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소나기가 장난꾼들의 시합에서 뜻이 결정되었다는 것인데, 비오는 모습의 한 가지 형태를 두고 이렇게 해석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그래서 진짜 뜻이 무얼까 궁금해서 옛 기록을 찾아보니 “훈몽자회”에도 ‘쇠나기’라고 나오더군요. 어떻게 달리 해석해볼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민간어원설이라고 합니다. 시골에 가면 ‘가재골’이라는 지명이 많은데,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가재가 많이 나는 골짜기라고 해서 그렇게 붙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가재가 나는 곳이면 가재만 있겠어요? 지명의 가재란 보통 중심으로부터 먼 곳에 있는 가장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큰 동네에서 볼 때 골짜기 안쪽에 있는 작은 동네라는 뜻이죠. 이 민간어원설에 의해 소나기는 기상을 두고 내기를 한 사람들의 짓에서 만들어진 말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어원을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이런 민간어원설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쇠나기의 ‘쇠’는 세차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악+이’의 구조인데, ‘이’는 ‘비’의 비읍이 떨어져나간 것입니다. 세차게 떨어지는 비라는 뜻이죠. 장마 중에 퍼붓는 비는 소나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해가 났다 싶은데 갑자기 빗줄기가 떨어지면 장마 중의 빗줄기와 똑같아도 훨씬 더 굵게 느껴지죠. 소나기는 이런 감정과 인식이 담긴 말입니다. 소와는 상관이 없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어원 연구에서는 민간어원설을 경계해야 하는데,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것은 기록에 의존하는 것일 겁니다. 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이죠. 그런데 문제는 훈민정음이 15세기에 발명되어, 그 이전의 언어 기록이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고 해도 한문으로 기록되어 정확한 실상을 알 수 없습니다. 예컨대 고려 때 기록으로 계림유사가 있고, 그 이전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의 지리지와 삼국유사의 향가가 있죠. 이런 기록들은 모두 한자로 쓰여서 그것을 판독해도 원래의 모습을 100%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장 확실한 학문의 성과를 내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어원 연구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어원에 대한 해석보다는 그 말이 옛 기록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중심으로 정리한 사전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학문 방법은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일반인들에게는 좀 답답한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상상을 동원해야 명쾌하게 풀리는 경우도 많거든요. 예컨대 입(口)의 경우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관련어가 없기 때문이죠. ‘읊다.’ 정도인데, 이것 가지고는 입의 어원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상상이 좀 필요하죠. ‘옷을 입다.’의 ‘입’이 바로 이와 가장 닮았습니다. 입(口)도 무언가를 집어넣는 것이니, ‘옷을 입다.’의 ‘입’과 같은 노릇을 하죠. 무엇이 들어가는 곳을 나타내는 말이 ‘입’이라는 심증(!)을 굳힙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학문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죠. 불안합니다. 우리의 어원 연구는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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