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학생 상담에 대한 교수법 연수 과정에서 꼭 듣게 되는 것은 상담은 선생으로 조언을 주는 것보다는 많이 듣고 학생에 공감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상담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입으로 먹고사는 선생이 입을 닫고 학생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어지간한 공력을 가지고는 하기 힘든 일이다.

젊은 교수 시절에는 열심히 학생상담을 한다고 밤늦게까지 두세 시간 이야기하고, 훈계하였다. 당시에는 학생 이야기만 듣는 것은 교수로서 기본 의무를 게으르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똑같은 이야기이지만 많은 시간 동안 학생을 붙들어 놓았다. 그리고 나의 진지한 이야기에 대하여 어떠한 반론도 없이 듣고 있으니 내 이야기가 신부님이나 스님의 말씀 정도는 되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학생들이 이러한 교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교수의 이야기를 부모님 잔소리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 우둔한 서생이 이해하는 데까지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결렸다.

최근 한 학생이 의례적으로 상담을 받으러 왔다. 상투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었다. 4학년이 되는 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단다. 그러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라고 물으니 대부분 학생이 답하듯이 상투적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으면 한단다. 공무원이 자신의 목표냐고 물으니 부모님이 하라고 하고, 공무원이 되면 노후가 편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고 해서 공무원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에 공무원이 자신의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하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러면 지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니 지금은 딱히 없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지금도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면 작가가 되고자 노력하였는지를 물으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고, 자기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단다. 그리고 작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로 작가는 밥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직업이기 때문이란다.

학생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았을 때, 그 학생이 두려워서 하지 못하였던 것이 기우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고, 진정한 글은 의미 있는 삶에서 나오고, 의미 있는 삶은 목표가 있는 삶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학생이 원하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나는 그 학생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볼 수 있었다. 그 학생의 작은 눈물은 진정한 상담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임을 내게 알려주었다. 학생과 함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경험한 것이 다르며,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다른 데 함께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공감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젊은이들이 자신의 꿈을 함께 이야기하고, 꿈이 현실이 되도록 도와주지 못하는 구조적 장벽이 너무 많다. 교육이 그 장벽을 무너뜨려야 하는 데 장벽의 높이만 더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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