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사랑과 욕정에서 근심이 생기고 사랑과 욕정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과 욕정에서 벗어난 이는 근심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 탐욕과 집착에서 근심이 생기고 탐욕과 집착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난 이는 근심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 사랑하는 사람을 애써 만들지 마라, 미운 사람도 만들지 마라,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얽매임이 없다!”

어제는 3학년 마지막 수업을 했다. 이들의 입학과 함께 이 학교에 부임해, 함께 웃으며 함께 땀 흘렸다. 오늘 헤어지면 영영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코끝이 찡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3개성상을 함께 하다 보니 눈빛만 보아도 마음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이 ‘담수(潭水)’라는 남학생! 내 수업시간만 되면 교무실 밖에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나가면 내 책가방을 얼른 받아들었다. 이렇게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란 생각이 들었다. 3월이면 한국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담수’는 꿈에 부풀어 있다.

수업시간만 되면 공부는 않고 화장만 하는 ‘송영’이라는 여학생 때문에 속을 썩이기도 했다. 백약이 무효였다. 사뮤엘 골드윈은 “인생의 성공기술 중 90%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라고 했다. 속을 썩이는 학생이 ‘나의 스승’이리라,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수행의 문’으로 삼자!

어느 날 무용실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문 열고 들어선 순간 큰 거울에 압도 당하고 말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 “아! 대원경지(大圓鏡智)여! 아, 바로 큰 거울의 지혜리라!”며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대원경지’란! 우리의 마음에는 ‘견분’(見分: 보는 마음)과 ‘상분’(相分:보이는 마음)이 있단다. 견분이란 주관의 세계요, 상분이란 객관의 세계다. 우리는 보통 객관의 세계가 따로 있고, 그것을 내가 인식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대원경지’에서는 그와 반대란다. 객관의 세계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은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란다. 삼라만상이 모두가, 내 속 썩이는 ‘송영’도,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란다. 이것이 바로 대원경(大圓鏡)의 지혜란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란 천주교 고백 기도문과도 일맥이 상통한다. 세상사 모든 허물을 누굴 탓하리요, 모두가 내 허물이리라!

‘송영’이를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라고 여겼더니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렸다. 어제 3학년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우리 함께 기념사진 찍자!”고 제의하니 모두들 흔쾌히 동의한다. 단체사진이 끝나자 “선생님 우리 둘이 사진 찍어요!?”라고 내 팔을 껴안는 학생이 바로 ‘송영’이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모두 따라서 “나도 나도!” 나는 커풀 사진의 모델이 되었다.

내가 보는 상대방은 바로 내 마음의 거울! 세상사 모두가 내 마음의 조작이요, 바로 내 탓이로다! 사랑과 욕정에서 벗어난 사랑!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난 사랑! 얽매임이 없이 걸림이 없이 사는 인생! 이것이 대원경지(大圓鏡智)요, 지혜로운 삶이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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