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정부가 하거나 하지 않기로 한 모든 것을 정책이란 한다. 학문적으로 정치를 정책으로 이해하고 있는 이스턴(D. Easton)은 정책을 “전체 사회를 위해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정책은 정치적 활동이다. 여기에서 정치적이란 정치인이 정권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술책이 아닌 통치자가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해 특정한 목적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과 관련해 정치권의 논쟁이 격렬하다. 그 핵심은 정책의 정치적 속성인 정무적 판단과 정무적 행위의 정당성에 관한 것이다. 신재민 전 사무관은 기획재정부에서 적자 국채 발행을 반대하였으나 청와대가 외압을 넣어서 이를 바꿨다고 한다. 논쟁은 이 정책 결정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정권을 위한 행위의 여부에 있다. 야당은 정권을 위한 것으로 여당과 정부는 정상적인 정무적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대형 사업을 추진할 때 경제적 분석과 같은 타당성을 분석한다. 이러한 타당성 분석은 그 자체가 정책결정이 아닌 정책결정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하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판단 이외에 정책결정자는 형평성, 대응성, 사회적 약자의 이익 보호, 지역 발전 등과 같은 가치판단을 해 정책을 결정하게 된다. 정책은 이처럼 다양한 기준에 의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으로 정무적 판단을 요구한다.

많은 정무적 판단을 위해 다양한 위원회의 심의, 공청회 등의 공식적 합의 과정을 요구한다. 그러나 실제의 많은 부분이 비공식적 과정에 의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블랙박스로 표현한다. 이 블랙박스가 판도라 상자가 돼 열리게 되면 혼돈을 가져온다. 지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김태우 수사관의 청와대 블랙리스트 의혹이 그러하다.

제퍼슨(T. Jefferson)은 “정치 세계에 가끔 일어나는 소규모 반란은 좋은 것이며, 폭풍이 물질 세계에 필요하듯 정치의 세계에도 필요한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는 정무적 판단이 정권 창출이나 정권유지가 아닌 공익과 국민을 위해 이뤄지도록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계의 비극은 야당은 여당 시절 자신이 한 행동을 반성하지 않고, 여당은 자신이 야당 시절 비판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정무적 판단이 국민과 공익을 위해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라의 많은 일과 조직의 의사결정은 정치적이고 정무적 판단을 요구한다. 이 결정 과정은 대부분 블랙박스 속에서 힘 있는 사람들 간의 타협과 조정으로 이뤄지지만, 그 과정에 국민과 공익이 없으면 블랙박스는 항상 열리게 되고 정권을 잡았던 사람들은 그 비밀에 포로가 되게 된다. 우리의 정치사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역대 정권과 정부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역사에서 나오는 원칙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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