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멍! 멍!”

안성사(安城寺)에서 키우는 짝귀가 지나가던 사람의 바지를 물고 놓지 않는다. 세상 그런 일이 없었다. 원래 착해서 사찰에 온 사람들은 짝귀를 보면 다가가 등을 쓰다듬고 끌어안고 해도 가만히 있던 개(犬)다.

짝귀에게 바짓가랑이를 물린 사람이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그의 아내가 달려와 짝귀를 떼어놓으려고 빗자루를 들고 때리려 하자 짝귀는 그에게 이를 드러내고 달려들었다. 그 틈을 이용해 사내가 도망가려 하자 번개같이 달려들어 다시 바지 아랫단을 물고 늘어진다.

“안돼요. 우리 짝귀 때리지 마세요. 짝귀야 왜 그래? 어서 놔 손님한테 그러면 안 돼.”

점심 공양 준비를 하던 윤 보살이 달려왔다. 전 같으면 윤 보살의 말 한마디면 먹던 고기도 내려놓던 짝귀가 오늘은 정말 ‘어느 개가 짖느냐?’는 듯한 태도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대웅전에서 이 소식을 접한 주지 스님이 달려와 짝귀의 등을 어루만지며 “이제 그만 놓아주자”라고 하자 한사코 놓기를 거부하던 짝귀가 슬며시 바지 아랫단을 놓고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적대심을 나타낸다.

“그놈 참 이상하네. 우리가 놓으라고 할 때는 죽으라고 놓지 않더니 주지 스님의 말은 잘 듣네.”

이빨에 긁히고 물린 종아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혹시 먼저 개를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습니까?”

“무슨 소리예요. 건너편 밭을 살피고 내려오는 길인데 처음에는 그냥 잘 따라오더니 사찰 가까이 오자 달려들어 물었어요.”

“그래요. 죄송합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선 광견병이 의심되니 병원 치료부터 받으셔야겠어요.”

짝귀에게 물린 남자는 60대 정도 되었고 서울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제야 기세가 등등하다.

“개를 그냥 놓아기르면 어떡해요. 이 치료비, 일 못 하는 것 다 청구하겠습니다. 원 나 재수가 없으려니 별일이 다 일어나네.”

사내가 식식거리며 주지 스님을 몰아쳤다. 그리곤 병원을 가겠다며 돌아서는 것을 주지 스님이 막아섰다.

“잠깐만요. 제가 모셔다드리고 치료해 드릴게요.”

사내가 엄살을 떠는 바람에 병원 치료비와 향후 약값까지 적잖은 돈을 지급하고 돌아온 스님은 마음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짝귀가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사람 중에 그 남자를 물고 늘어졌을까?’

‘짝귀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혼자 묻고 답하기를 수십 번, 스님은 무엇인가 등산객과 짝귀의 인연이 있을 것이란 추측에 이르렀고, 출가 전 추리작가를 꿈꾸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개에게는 특별한 기억력이 있다고 했어, 예를 들어 어려서 길러준 주인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알아본다든가 하는?’

‘교토대학 심리학 연구소의 후지타 카즈오 교수는 평범한 개라도 대략 천 개 정도의 음식 냄새를 기억할 수 있고, 특별한 훈련을 받은 개라면 천오백 개까지도 가능하다….’

스님은 윤 보살을 불렀다.

“보살님 짝귀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나요?”

“글쎄요. 제가 오기 전이니까 10년이 넘었나 보네요.”

“그때도 귀가 지금처럼 찢어져 있었나요?”

“그럼은요.”

안성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안성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찰로서 신도 수도 얼마 되지 않는다.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요즘 어느 마을에서나 느껴지는 공통 사항으로 마을이라고 해봐야 일곱 가구 10여 명의 노인들만 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왜 그랬을까?’

‘우리 짝귀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공격하는 것을 보지 못했었다.’

‘혹, 아랫마을에 농작물 도둑 같은 것은 든 일은 없었을까?’

주지 스님은 지구대를 찾아가 자신의 답답함을 호소해봤지만 돌아온 답은 개를 풀어놓아 사람을 물게 했으니 과태료를 내야 한다며 고지서를 발부하겠단다. 혹 떼러 갔다가 오히려 혹을 붙여 온 마음이 씁쓸하기만 하다.

별 소득 없이 지구대를 물러 나온 주지 스님은 이번에는 담당 경찰서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13년 전인 2006년 12월 인근 마을인 산야리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지금까지도 그 범인은 검거되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2006년이라면 자신이 주지로 부임하기 5년 전 일이다.

산야리 빈집을 수리해서 화실을 꾸미고 이주해 온 40대 여류화가! 그는 외모도 뛰어나지만, 읍내 중학교 방과 후 미술 교사여서 꽤 유명인사로 알려졌다고 했다. 어느 날 열린 대문 틈새로 들여다본 동네 사람에 의해 발견된 여류화가는 겉옷이 벗겨지고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고 그 옆에는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시신을 지키고 있었다. 강아지도 무엇에 얻어맞았는지 오른쪽 귀가 찢어지고 등에 흘린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용의자 수색에 나섰지만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다만 죽은 여류화가의 손톱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이 발견되어 한동안 활기를 띠었으나 범인 색출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럼 그 강아지는 어떻게 되었나요?”

“당시 미술을 배우던 한마을에 살던 중학교 제자가 데려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혹 당시의 사진 좀 볼 수 있을까요?” 흑백 사진 속에는 흰털이 귀여운 중개 정도의 강아지가 등에 붉은 피칠을 하고 힘이라곤 하나도 없이 시신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측은했다.

“그럼, 그 사건을 재조사 중인가요?”

“아무런 단서가 없어서 답답해하고 있어요.”

주지 스님은 무엇인가 집히는 게 있었다. 자신이 키우는 짝귀가 사진 속의 강아지였다는 사실에 무게가 실려졌다. 며칠 전에 일어난 짝귀 사건을 이야기하자 담당 수사관의 얼굴이 함박꽃으로 변한다.

“그 짝귀가 13년 전 이웃 마을 여류화가 살인 사건 현장에 있던 유일한 목격자일 수 있습니다. 그 강아지는 그날 범인으로부터 무엇인가에 얻어맞아서 귀가 찢어지면서도 달려들었지만, 너무 어려서 주인을 지켜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짝귀라는 이름도 그래서 얻어진 듯하네요.”

“지금도 짝귀의 한쪽 귀 끄트머리가 없어요. 그렇다면 범인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요?”

“성폭행을 시도하다가 극렬하게 반항하니까 살해한 것 같아요.”

“스님 그 사람 치료한 병원이 어디입니까? 우리가 보관하고 있는 당시의 DNA와 진찰받은 병원의 기록을 국과수에 보내면 멋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습니다.”

미제사건 전담 수사관들은 대어를 낚은 기분에 들떠 있었지만 주지 스님은 자신이 키우고 있는 짝귀가 그 엄청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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