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영화 ‘인생 후르츠’에서 중간중간 나레이션으로 반복되는 구절이다.

후시하라켄시 감독의 이 영화는 슬로 라이프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90세 건축가 할아버지 ‘츠바타슈이치’와 87세의 웃는 모습이 예쁜 만능 살림꾼 할머니 ‘츠바타히데코’. 둘의 나이를 합치면 177세이다.

65년 함께 한 노부부는 50여년을 살아온 집에서 100여종이 넘는 채소와 과일을 키우며 살아간다. 떨어진 낙엽을 쓸어 모아 감자밭에 뿌리며 몇 년이 지나면 비옥해질 땅을 꿈꿔본다. 서두르지 않고 결과를 재촉하지 않지만 노부부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시간을 보낸다.

정원을 내다보기에 적절한 식탁의 위치를 정하는데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고 손녀딸의 어린시절 사진을 보며 너털웃음을 짓기도 한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 놓기 보다는 지금까지 걸어온 그 길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햇볕이 따스한 거실 한켠에 앉아 혼자 남겨질 서로에 대해 마음 아파한다. 삶의 미련보단 남기질 사람의 외로움을 아파하는 것이다.

잡초 제거 작업을 마치고 휴식을 하던 할아버지는 그대로 하늘나라로 떠나고 할머니는 생전에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을 만들어 남편을 추억한다.

영화가 감동을 주는것은 노부부의 일상이 특별하다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닮은듯 닮지 않은 그 무언가가 관객의 부러운 시선을 끈다.

서로에 대해 존중하는 부부, 화려하지 않은 음식, 꾸미지 않은 집, 그리고 인생에 대한 소박하지만 특별한 메시지를 통해 삶의 진짜 풍요로움과 꾸준히 천천히 익어가는 인생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살아가는 길에는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의 불행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통틀어 볼 때 불행은 10% 이고 나머지 90%는 행복한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행은 투정하고 행복은 당연시 하며 소홀히 하기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믿는다 한다.

아픔을 견뎌낸 사람이 삶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행복도 느낄 줄 아는 것이다.

100세의 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오르내리기에 힘이 들음에도 불구하고 언덕 위의 낡은 집에 산다. 그 이유는 하늘을 많이 볼 수 있어서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성공과 물질을 잣대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성공과 행복의 함수관계는 다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은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물질과 행복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경제적으로 중산층이면서 정신적으로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이 행복하며 사회에도 기여한다고 한다. 인격성장이 70이라면 70의 재물을 소유하면 되고 90의 상속을 받았다 해도 인격수준이 70이라면 분에 넘치는 20으로 인해 고단한 짐을 지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행복하니?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인생 후르츠, 내 인생에는 어떤 열매가 익어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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