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외교관은 외국에 주재하며 외교부장관 감독아래 외교 사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을 말한다. 필자의 8남매 중 막내인 동생이 전문 외교관으로 30여년 봉직하고 있어 외교관의 애환과 실상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됐다. 동생은 일찍이 대학3학년 때 지방대에선 드물게 외무7급 시험에 합격해 학교졸업 후 동기들보다 1년 늦게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시험을 위한 준비나 날짜를 가족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슬그머니 소문 없이 가 시험을 보았고 합격자 발표 후에 전후사정을 이야기 해 가족들을 기쁘고 놀라게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험당일은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 아버지 생신잔치를 하는 날인데 동생이 안보이다 행사가 다 끝날 무렵 저녁때 와서 형님들과 같이 꾸지람을 주었는데도 시험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과묵한 동생이다.

절제와 비밀 준수는 외교에서 무엇보다 금과옥조라 할 수 있는데 선천적으로 외교관으로서의 자질을 타고났다는 믿음에 동생이지만 칭찬하고 싶다.

‘외교관의 길’ 긴 여정을 걸으며 외교관 꽃이라 불리는 ‘대사’로 3년 전에 올라 전임 중미 니카라과 대사 임기를 성공리에 마치고 이번에 인접나라인 과테말라 대사 자리로 명을 받고 영광스럽게 부임했다. 통상 외교관하면 외국에서 생활하며 나라를 대표해 외교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라 언뜻 보면 멋있고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내면에는 어려움과 고충 또한 많이 있다.

먼저 삶의 기초인 건강관리가 쉽지 않다. 나라마다 기후와 풍토가 다르고 생활수준이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건강을 해치기가 쉽다.

두 번째는 환경적응이다. 국내에서 광역시와 도는 물론 시·군 간에도 지역별로 약간씩 차이와 특색이 있어 새로운 지역에 가면은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나라를 옮겨 다니는 건 보통일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특히 자녀들 교육시키기가 어렵다고 한다.

세 번째는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픔이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이리저리 옮겨 다녀도 함께 생활할 수 있지만 상급학교로 가면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생활해야만 한다. 20여년전 작고하신 어머니 와병 중에는 동생이 공무 차 일시 귀국했다 떠나며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어머니 손을 잡고 통곡하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고 눈물이 난다. 이와 같은 외교관의 비애는 필자가 어렴풋이 본 것이고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화려함 뒤의 애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으로 본다.

가끔 가족들 모임이나 지역 잔치에서 동생이 부르는 애창곡 노랫소리를 듣다보면 타향살이 인생의 애환을 감지할 수가 있어 애처로운 생각이 많이 들곤 한다. 가끔 언론에 외교관들의 이탈이라든가 외교미숙으로 국민들의 공분과 지탄을 받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남들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은 외교관 실상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다.

잘못된 부분은 당연히 빨리 개선 발전시켜야 한다. 외교관은 누구보다 국가관과 사명감이 투철해야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멸사봉공해야 한다.

국익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치는 외교관들의 노고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힘차게 응원하며 축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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