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랑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죽음은 남녀노소와 빈부의 격차를 상관하지 않고 생명체들에게 찾아오는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죽음은 우리 삶 바로 옆에 있지만, 나에게는 머나먼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데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의 미래 (예를 들면 권력, 부의 확장)의 성공에 관심을 기울인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이러한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이 출판된 지 13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널리 읽히고 세계의 대작가들에게 찬사를 받는 것도 인간의 죽음에 대한 숙명적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처절하게 그려내서일 것이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제정 러시아(1800년대 후반)의 판사로 이미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젊었을 때 이반은 소박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으나 가정을 꾸리고 삶에 안주하면서 보다 좋은 집과 환경, 명예를 추구하게 됐다. 마침내 그 성공의 정점에 올라선 찰나, 사소한 일로(새로 장만한 집을 장식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져)의문의 불치병에 걸리게 되어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며 죽음과 삶의 의미를 성찰한다.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닮아있다. 소설 속에서 이반은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 않을 때, 이를 해결하기 보다는 브리지 게임(포커의 일종)을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며 문제를 외면했고 그 일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러서야 진정 자신이 원한 것은 가족의 사랑임을 깨닫고 이를 갈구하지만 가족은 그를 피상적으로 대한다. 아내는 가장이 죽음으로써 연금과 금전적인 문제에 손해를 입을지 걱정하며, 결혼을 앞둔 딸은 병으로 인해 죽어가는 아버지가 자신의 미래에 안 좋은 영향을 줄지 염려한다. 오히려 이반은 기대하지 않았던 어린 아들과 제 3자인 충직한 하인을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과연,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죽음에 준비되지 않아서이다. 지금 당장 죽더라도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죽음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죽음에 열려있는 삶을 살며 매 순간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우리는 각자 처해진 상황 속에서 허우적대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카르페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에 충실 하라”이다. 결말에 이반은 단말마의 고통 속에 몸서리치지만, 어린 아들의 눈물이 손에 닿는 순간 비로소 고통에서 해방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의 사랑이, 죽음 앞에서 한없이 두려워하던 그를 마지막 구원의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이러한 톨스토이의 생각은 그의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가장 적당한 시기란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뿐이라고 역설한다. 시간은 인간이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지금’이라는 시간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으며,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를 충실하게 보내야하며 쑥스럽더라도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야한다. 당신과 내가 함께 숨을 쉬고 있는 지금 이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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