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영의 고전 산책] 기호지세(騎虎之勢), 끝장을 봐야 보람이 찾아온다
[김치영의 고전 산책] 기호지세(騎虎之勢), 끝장을 봐야 보람이 찾아온다
  • 충청매일
  • 승인 2018.11.2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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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가

440년.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남쪽에는 동진(東晉)이 세워졌고 이어 북쪽에는 후위(後魏)가 건국되었다. 이로써 본격적인 위진남북조시대가 열렸다. 이어 동위(東魏),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로 권력이 이어졌다.

북주의 마지막 임금 선제가 죽자 그의 어린 아들이 즉위하였다. 이때 선제의 장인이자 재상인 양견(楊堅)이 국가 권력을 모두 쥐고 있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천하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양견이 궁중에서 반란을 도모하고 있을 때, 익히 남편의 의중을 잘 아는 아내 독고(獨孤)로부터 한통의 서신이 전해졌다.

“큰일은 이미 벌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는 마치 사나운 호랑이 등에 엉겁결에 올라탄 것과 같으니 도중에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겁을 먹고 중도에서 내린다면 그대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부디 목적을 달성하소서.”

아내의 격려에 용기를 얻은 양견은 즉각 반란을 실행하였다. 선제의 아들을 폐위시키고 자신이 황제에 올라 수(隨)나라를 건국하였다. 그로부터 8년 후에 남조(南朝)에 진(陳)나라를 무너뜨림으로 천하를 통일하였다.

이전에 양견이 아내 독고와 결혼할 때 일이다. 독고는 양견에게 한 가지 다짐을 받았다. 첩에게서는 결코 자식을 낳지 않겠다. 독고는 그만큼 질투가 많은 여자였다. 양견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수시로 남편을 감시했다. 혹시라도 주변에 모르게 만나는 궁녀나 미인이 있나 철저히 살폈다. 그런데 양견이 비밀리에 만나는 후궁이 있다는 정보를 전해 들었다. 알고 보니 그 후궁은 대단한 미인이었다.

하루는 양견이 후궁을 만나 편안히 쉬고 나서 조정회의에 들어갔다. 독고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수하의 자객을 시켜 그 후궁을 없앨 것을 명했다. 자객이 몰래 후궁의 방에 침입했다. 그리고 외부에 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후궁을 살해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후궁은 혹독하게 맞아서 죽었다고 한다.

회의 중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양견은 분노하고 말았다. 도중에 말을 타고 궁궐을 뛰쳐나갔다. 그러자 호위 신하들이 쫓아오며 물었다.

“폐하, 도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이렇게 급히 어딜 가시는 겁니까?”

그러자 양견이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의 황제인데, 어찌 여자 하나를 내 맘대로 못한단 말이냐! 황제라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없지 않느냐!”

하지만 양견은 이내 달리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자신을 황제에 오르게 한 이가 바로 아내 독고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에도 독고의 감시는 철저했다. 얼마나 철저했던지 그녀가 쉰 살에 명이 다해 죽을 때까지 양견은 후궁에게서 단 한 명의 자식도 낳지 않았다. 이는 ‘수서(隋書)’에 있는 이야기이다.

기호지세란(騎虎之勢)란 호랑이 등에 올라타 달리는 형세를 말한다. 하던 일을 도중에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우리 속담에 ‘벌인 춤’이란 말이 있다. 한 번 춤을 시작했으면 잘 추든 못 추든 끝까지 출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을 선택했으면 끝까지 밀고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끝장을 봐야 보람이 찾아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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