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200년, 천하를 평정한 한(漢)나라 유방(劉邦)은 이후 흉노 정벌에 나섰다. 마침내 대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흉노 군사들은 도망만 갈 뿐이지 싸우려하지 않았다. 유방은 이 상황을 쉽게 판단했다.

“가소로운 것들! 감히 한나라 국경을 쳐들어와. 놈들을 계속 쫓아라!”

흉노들은 쉬지 않고 도망갔고, 한나라 군대는 쉬지 않고 추격했다. 그러다가 백등산 근처에 이르렀다. 이때 유방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수십만 명의 흉노족이 한나라 군대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게다가 유방을 뒤따르던 후방 부대가 보이지 않았다. 유방은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포위된 지 나흘이 지나자 한나라 진영은 식량이 바닥났다. 이를 보고 받은 유방은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했다. 이때 책사인 진평이 묘책을 가지고 아뢰었다.

“흉노의 왕 선우는 연지라는 미인을 총애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다 들어준다고 합니다. 연지를 이용하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유방은 곧바로 진평에게 수많은 금은보화와 한 폭의 그림을 건네주었다. 진평이 이를 싣고 몰래 연지를 찾아가 아뢰었다.

“이 보물들은 한나라 황제께서 부인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이는 화해하고자 하는 뜻이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선우에게도 잘 말씀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 진평은 한 폭의 그림을 꺼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만약에 선우께서 화해를 거절하실까 염려스러워 한나라 황제께서는 천하제일 미녀를 선물로 바치고자 합니다. 이 초상화는 바로 한나라의 미인입니다. 부인께서 먼저 보시고 선우의 여자로 괜찮은지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연지는 천천히 그림을 살펴보았다. 초봄의 수양버들 같고, 3월의 복숭아 꽃 같은 여인이었다. 촉촉한 눈망울과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참으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연지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질투심이 솟았다.

‘선우가 이런 미녀를 얻게 되면 아마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

연지가 진평에게 말했다.

“보내준 보물들은 화해의 표시로 받겠소. 하지만 이 초상화는 그냥 가져가시오. 내가 선우께 화해를 청하도록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진평이 돌아간 후에 연지가 선우를 찾아가 말했다.

“한나라 지원군이 곧 당도한다고 합니다. 저는 전쟁보다는 한나라와 화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선우께서 제 청을 들어주십시오!”

선우는 이내 연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곧바로 한나라와 협상을 했다. 흉노는 포위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수많은 재물을 손에 넣었다. 이렇게 해서 유방은 간신히 한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는 ‘한서(漢書)’에 있는 이야기이다.

질투망상(嫉妬妄想)이란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공연히 질투심을 갖는 것을 말한다. 질투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하는 태도를 보일 때 느끼는 미워하는 감정이다. 하지만 질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착한 여자의 질투는 남자를 부자로 만들고, 악한 여자의 질투는 남자를 철학자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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