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란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부서 내 조직개편으로 팀이 늘어나면서 한 달여간 칸막이 없이 새로운 남자직원과 책상을 마주하고 생활해야하는 민망한 기간이 있었다. 머리만 들면 두 분의 팀장님과 눈이 마주치는 상황이라니… 하루빨리 일부분을 격리시켜주는 칸막이의 안정감을 소망하는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드를 파괴하라’ 그리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격자’를 뜻하는 바둑판 모양으로 대부분의 사무공간은 이런 형태의 그리드 공간이다. 파괴하라는 제목이 주는 반발적 호기심으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놀랍게 읽고 난후 나의 마음은 간절히 칸막이는 없애야 한다고 전향되고 말았으니 실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저작이 아닐 수 없다.

핵심은 공간을 바꿈으로서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고 초경쟁시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소통과 창의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주장하는 공간의 변화는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페이스북은 2천800명의 직원이 하나로 뻥 뚫린 초대형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쥐었다는 그리드를 파괴한 신사옥 ‘스페이스십’을 건축 중이며, 구글과 아마존도 각기 다른 형태로 그리드를 파괴한 건물을 건축 중이다. GAFA 이외에도 수평적 조직 운영,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등으로 조직 내 장벽을 파괴한 기업들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빅데이터를 혼용한 조직 커뮤니케이션 실험 또한 계속되고 있다.

상업 공간도 이제는 쇼핑이 아니라 몰링(malling)의 시대다. 밀라노의 이탈리와 텐코르소코모에서 카페와 식당, 문화와 엔터테인먼트가 복합되면서 시작된 몰링은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대형 복합 쇼핑몰의 강력한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기존의 그리드를 파괴한 몰링에서 매출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업 공간, 업무공간은 혁신적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이 움직임에 편승해야한다.

공공건물 중에서 시민이 주인인 공간을 떠올려 본다. 가장 시민에게 열린 공간은 도서관이 아닐까? 영국을 대표하는 공간이론가인 켄 워폴은 공공도서관을 ‘도시의 거실’로 비유하곤 하는데 그는 공공도서관은 수많은 커뮤니티 집단과 개인의 다양한 사용 요구가 교차하는 복합공간으로 중층적 공공성의 대표적인 장소라고 말한다. 그의 말속에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모습은 어디쯤 있는가? 가장 공적인 공간에 독서실 같은 개인학습공간을 만들라는 우리의 기형적인 공공도서관 현실에서부터 수없이 많은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교차한다.

공공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공간에서 문화센터, 커뮤니티센터, 평생교육센터 등으로 그 역할이 확대돼 왔다. 하지만 역할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공간은 그리 변화하지 않았다. 아직도 기존의 행정기관처럼 그리드로 둘러싸인 도서관 공간이 비로소 보인다. 그리드는 비단 공간만이 아니다. 관리 위주의 정책, 제약, 서비스 규정 등 무엇보다 고정된 인식의 틀과 무관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그리드도 많다. 이런 유형무형의 그리드가 카페나 상업적 공간에 우리의 소중한 독자를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그리드를 파괴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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