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춘추전국시대의 가장 강력한 국가인 진(晉)나라 문공(文公)과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우호협력을 맺었다. 곧이어 두 나라는 군대를 연합하여 약소국인 정나라의 땅을 뺏고자 했다. 연합군이 출정하여 정나라의 도읍을 포위하였다.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자 정나라는 다급했다. 도무지 군사력으로는 연합군을 이길 가망이 없었다. 이때 정나라 조정에서 말 잘하는 신하 촉지무(燭之武)를 야밤에 몰래 성 밖으로 내보냈다.

촉지무는 곧바로 진(秦)나라 진영을 찾아갔다. 군문 입구에서 대성통곡하며 왕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했다. 운이 좋게도 목공을 만나게 되었다. 촉지무가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올리고 아뢰었다.

“지금 두 강대국이 약소한 정나라를 포위하고 있어 정나라는 곧 망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정나라가 멸망하여 그것이 진(秦)나라에 이득이 된다면 이는 매우 가치 있는 공격인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하는 것입니다. 정나라가 멸망했다고 칩시다. 목공께서 정나라의 땅 한 평을 차지하려면 반드시 진(晉)나라를 거쳐서 넘어와야 합니다. 진(晉)나라의 허락이 없이는 정나라의 땅을 소유할 수 없는 상황인 겁니다. 연합하여 정나라를 멸망시켰지만 따지고 보면 진(晉)나라에게 정나라를 선물한 셈인 겁니다. 목공께서는 왜 진(晉)나라의 영토를 넓혀주려 하시는 것입니까? 진(晉)나라가 커진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진(秦)나라가 약해지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닙니까? 만일 정나라를 그대로 유지하게 한다면 목공께서는 진(晉)나라와 지금 같은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일 정나라가 사라진다면 목공께서도 언제 진(晉)나라의 침략을 당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진(晉)나라가 과연 정나라 하나만 차지하면 그 욕심을 그만두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정나라를 차지하면 바로 서쪽으로 영토 확장에 나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쪽은 다름 아닌 진(秦)나라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 전쟁을 한번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촉지무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진(秦)나라 목공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즉시 진(晉)나라와 연합한 군사들을 불러들였다. 이어 정나라와 동맹을 맺는 한편, 세 사람의 장군을 정나라에 보내 진(晉)나라의 공격을 막도록 했다. 그리고 목공 자신은 주력부대를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 소식을 들은 진(晉)나라 진영은 긴박했다. 우선 이 기회에 목공을 추격하여 진(秦)나라를 없애자는 강경파가 있었고, 정나라만 정벌하자는 온건파가 있었다. 하지만 진(晉)나라 문공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두 가지 안건은 모두 불가하다. 애초에 우리가 목공을 끌어들인 것은 남의 힘을 빌려 정나라를 차지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니 목공을 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한 연합군의 빌미가 사라졌으니 우리도 정나라에서 철수하는 것이 좋겠다.”

이에 정나라는 멸망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춘추좌씨전’에 있는 고사이다.

부전굴인(不戰屈人)이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킨다는 의미이다. 우호동맹도 내가 불리해지면 금이 가고, 심지어 적으로 돌변하는 법이다. 세상에 이익을 앞에 두고 믿을 놈이 어디 있겠는가!

aionet@naver.com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