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19년, 한(漢)나라 애제(哀帝)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애제는 젊고 혈기가 왕성하여 나랏일은 돌보지 않고 늘 쾌락에 빠져 지냈다. 그 틈에 애제의 모친이 친인척들을 불러들여 조정 실권을 쥐게 되었다. 황제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얼마 후 이번에는 외척끼리 다툼이 생겨 조정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는 서로 더 높은 권력을 차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갈수록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하지만 모든 신하들은 외척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이때 신하 정숭(鄭崇)이 나서서 애제에게 아뢰었다.

“폐하, 지금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들의 삶이 아주 어렵습니다. 하오니 외척들을 물리치시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으셔야 합니다.”

이에 애제는 정숭의 용기 있는 행동을 칭찬하여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러나 갈수록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외척들의 싸움은 끝이 없었다. 이에 정숭이 몇 번이고 애제를 찾아가 외척을 물리쳐야 한다고 간언하였다. 그러자 애제가 이내 그 말이 듣기 싫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도대체 그대는 틈만 나면 내게 잔소리를 늘어놓는구려. 이제는 듣기 싫으니 썩 물러가시오!”

마침 이 광경을 외척 중에 조창이라는 신하가 몰래 보게 되었다. 그는 아첨을 일삼고 고자질을 잘하는 간신배였다. 평소 올곧고 바른 소리 잘하는 정숭을 꺼림칙하게 여겼다. 정숭이 애제에게 신임을 잃자 조창은 크게 기뻐했다.

“드디어 저 놈을 없앨 기회가 왔다. 그동안 우리 외척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는데 잘 됐어.”

조창이 정숭을 모함하여 애제에게 아뢰었다.

“폐하, 정숭의 집은 청탁하러 오는 자들로 그 대문 앞이 마치 시장과도 같다고 하옵니다. 부정거래가 있다고 하오니 그 배후를 철저히 조사해주시기 바랍니다.”

애제가 이를 듣고 크게 실망하여 당장 정숭을 잡아들이라 하였다.

“그대의 집은 청탁하러 오는 자들로 늘 붐빈다고 하는데, 대체 신하된 자가 어찌 함부로 무엄한 짓을 한단 말인가!”

이에 정숭이 대답했다.

“소신의 집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들과 뇌물을 주고받거나 무슨 부정을 행한 적은 결코 없습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하지만 애제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형리에게 명을 내렸다.

“당장 정숭을 옥에 가두어라!”

얼마 후 정숭은 자신의 누명을 벗지 못하고 결국 옥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는‘한서(漢書)’에 있는 이야기이다.

문전성시(門前成市)란 대문 앞이 마치 시장처럼 왁자지껄 사람들로 붐빈다는 뜻이다. 세도가나 부잣집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은 조그만 이익이라도 얻기 위함이다. 개미가 단맛에 몰려들 듯, 사람들은 이익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러니 맘 편히 살고자 한다면 사람 많이 모인 곳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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