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중국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필자는 여름방학을 틈타 두 달 동안 귀국했다가 지난주에 다시 이곳 중국으로 왔다. 두 달이 눈 깜짝하듯 지나갔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외손자, 외손녀와 함께 보냈다. 애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요 보람이었다.

청주공항을 출국할 때만 되면 “나도 비행기타고 할아버지 따라 갈래!”가 귓가에 쟁쟁하다. 3년 전이다. 필자를 배웅하려고 딸을 따라온 외손자가 저도 함께 비행기타고 가겠다고 필자 등에 바짝 달라붙어 한 말이다. 다섯 살 철부지 행동이지만 떼어 놓고 갈 일이 만만치 않았다. 5개월 된 외손녀는 제 오빠의 절박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필자의 품에서 새록새록 잠들고 있었다. 등에는 외손자가 가슴에는 외손녀가! 이것들을 어떻게 떼어놓고 떠나지? 당시 그 애틋한 심정을 형언할 수가 없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공항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있자니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거지?! 난생 처음 혈육과 생이별하는 애틋함 맛보았다.

무상신속(無常迅速)이라더니,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필자 등에 달라붙어서 난감하게 했던 외손자는 금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운동을 아주 잘하고 체격도 당당하게 자랐다. 필자 품에 안겨서 헤어졌던 외손녀도 네 살이 되어 못하는 말이 없게 됐다. 할아버지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잠을 잘 때도 제 엄마한테 안자고 필자와 함께 잔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 만주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 신라장군 이사부/ 역사는 흐른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함께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내용이 너무 좋았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를 모두 외우고 또박또박 부르는 게 신통하기만 했다. 어린이는 칭찬 속에서 큰다고 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럿이 모인 장소에서 부르게 했더니 거침없이 불러서 칭찬을 많이 받았다.   

지금 우리는 ‘인구절벽’의 시대를 살고 있다. 둘만 낳아도 ‘애국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손자들이 ‘주렁주렁(?)’한 가족사진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교육입국’이라! 귀여운 손자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영국은 신사도(紳士道)를 통해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고, 일본은 ‘예절바른 일본인!’을 통해, 미국은 ‘건강한 미국인!’을 통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이곳 중국에선 ‘중국몽(中國夢)’의 기치아래 강대국을 꿈꾸고 있다. 요즘은 ‘지덕체’가 보다 ‘체덕지’를 선호한다고 한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란 말과 같이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10대에는 꿈을 키우고, 20대는 실력을 키우고, 30대는 인간성 키우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길은 여러 갈래 있지만 결국은 ‘하나’로 통한다. 그 ‘하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기성세대의 과제이자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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