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450년, 관중(管仲)은 제나라 사람이다. 젊은 시절 포숙(鮑叔)이라는 친구를 만나 친하게 지냈다. 관중은 제나라 양공의 둘째동생 공자 규를 섬겼고, 포숙은 양공의 막내 동생 공자 소백을 섬겼다. 어느 날 양공의 사촌동생인 공손무지(公孫無知)가 양공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정국이 험악해지자 공자 규와 소백은 각각 노(魯)나라와 거나라로 망명을 떠났다. 얼마 후 공손무지가 신하에게 암살되었다. 이에 제나라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큰 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유력한 왕의 계승자인 두 공자가 망명지에서 이 소식을 듣고는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 이때 공자 규는 활 솜씨가 뛰어난 관중을 자객으로 보내 소백을 암살하도록 명했다. 거나라에 잠입한 관중은 소백이 수레에 오르는 것을 목격하고 이내 조준하여 활을 당겼다. 화살은 정확했다. 소백은 그만 수레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소백이 죽었다는 소식에 공자 규는 느긋하게 귀국길에 올랐다.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소백이 살아난 것이었다. 관중이 쏜 화살이 소백의 청동허리띠에 맞아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구했던 것이다. 소백은 죽은 체하며 급히 말을 몰았다. 공자 규보다 먼저 귀국하여 왕위를 차지하였다. 뒤늦게 귀국한 공자 규가 소백에게 저항했지만 패하고 말았다. 결국 공자 규는 자결하고 그의 부하들은 처형을 앞두고 있었다. 이때 관중 역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포숙이 소백을 찾아가 간곡히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제나라 군주로 만족하신다면 지금 가진 신하들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천하의 패권자가 되고자 하신다면 관중을 살려주어 등용하셔야 합니다.”

소백은 잠시 고민하더니 포숙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이에 관중은 부국강병 정책을 써서 제나라 경제를 부흥시켰다. 소백은 천하의 패권자에 오르니 이가 바로 환공이다. 관중은 죽기 전에 친구 포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 시절 나는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항상 그가 더 많이 투자를 했지만 이익을 나눌 때는 내가 더 많이 차지하곤 했다. 그럼에도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로 여기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벌이다가 실패하여 그를 무척 곤궁하게 만들었다.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탓하지 않았다. 운이란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다고 도리어 나를 위로해주었다. 또 예전에 내가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을 때 포숙은 나를 못났다고 여기지 않았다.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라 위로했다. 그리고 내가 전쟁터에서 도망쳤을 때에도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게는 모셔야 할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처형당할 몸이 되었을 때, 포숙은 나를 수치도 모르는 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부끄러워한 것은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었다.” 이는 사마천의‘사기열전(史記列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란 관중과 포숙처럼 돈독하고 허물없는 우정을 뜻한다. 청춘의 시절에 꼭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면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낫고, 천만 금을 얻는 장사보다 귀중한 일이다. 귀 있는 청춘들은 새겨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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