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한 차례 된비알을 숨을 몰아쉬며 오르면 이제 평탄한 등마루다. 건물이 있었을 것 같은 너른 대지가 나온다. 납작한 슬레이트 같은 돌로 쌓은 나지막한 성벽을 만난다. 마치 어느 농가의 얌전한 담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담장을 넘어 성 밖은 7~8m나 되는 성벽이다. 가파른 경사면에 까마득하게 쌓았다. 골짜기를 감싸 안고 축성한 완연한 포곡식 산성이다. 온전하게 보존된 모습이 경이롭다.

이쯤에서 성벽 아래로 내려가 성을 올려다보아야 한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성벽에서 자라난 나무 등걸을 잡고 성 아래로 내려간다. 아, 위에서 보는 것보다 더 높아 보인다. 두께 10cm 정도, 너비 30cm 안팎의 납작한 돌을 켜켜이 쌓은 모습이 잘라놓은 시루떡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판축식 토성이 층을 이루어 돌로 굳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경이로운 성벽에 취해 올려다본다.

갈미봉에서 전망대까지 길은 아주 평탄하다. 담장 같은 성벽이 중간에 뚝 끊어진 곳이 있다. 성이 무너진 부분인가 했더니 아니다. 서문지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동문이 있고, 북쪽, 서쪽에 문이 한 곳씩 있다고 하고 남쪽으로 대문이 있다고 한다. 내부에서 보면 담장처럼 나지막한 성벽도 외벽을 보면 아찔하게 높다. 안쪽 성벽에 나무 기둥을 세웠던 자리인지 성벽에 홈이 보인다. 어떤 기둥을 세웠을까. 호점산성은 발굴 조사한 적이 없어 학술적 기록을 찾아볼 길 없다.

전망대에 오르면 산은 치알봉이 정상이고 성은 전망대가 중심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남쪽으로 청주에서 대전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훤히 보이고 대청호가 한 눈에 들어온다. 북서쪽으로 샘봉산에서 피반령으로 뻗어가는 팔봉지맥이 꿈틀거린다. 동으로는 산성의 안동네가 있었을 아늑한 골짜기를 품고 있다. 숨을 고른 다음 정상인 치알봉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가파르지 않은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 부분에 마치 망루라도 있었던 자리인지 다른 곳에 비해 좀 더 높고 큰 성벽을 발견했다. 쌓은 방법도 정교하고 더 높다. 정방형 성곽이 치성처럼 밖으로 툭 튀어 나갔다. 너비도 훨씬 더 넓다.

섣부른 짐작은 금물이지만 청주 부모산성을 중심으로 문의의 구룡산성, 호점산성, 백골산성이 고리산성에 이어져서 삼년산성에 대비한 어떤 방어망이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은에서 청주로 가는 길목이기에 신라라면 삼년산성을 방어하는 보조성 역할을 했을 것 같고, 고구려라면 삼년산성이나 계족산성을 공격하는 거점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백제라면 계족산성의 전진기지 쯤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지한 추측이겠지만 연구는 추측과 가정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주차장 정자에 앉아 마음속으로 정리해 본다. 궁금증이 계속 꼬리를 문다. 특히 성을 쌓은 시대 정치적 상황은 어떠했을까. 호점산성은 무엇으로 쓰였을까. 전설처럼 최영 장군과 관련 깊은 산성일까. 금칼이 숨겨졌다거나 최영 장군의 태묘가 있다거나 우리나라 사람이 3일간 먹을 양식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단순한 전설일까,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일까. 오늘을 사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이렇게 많다. 삼년산성이 사령부라면 호점산성은 삼년산성의 전진기지이고 계족산성이 백제의 사령부라면 호점산성은 역시 전진기지인 것은 틀림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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