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붉은 태양이 우암산마루에 솟아오르면 오늘도 이 땅을 얼마나 뜨겁게 달굴 것인지아침걷기 운동하는 나의 발길에도 두려움이 앞섰다. 지난달 12일 기상청에서 폭염특보를 발표한 뒤 한 달이 넘었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폭염도 물러날 기미가 보이는 것일까. 기승을 부리던 열대야(熱帶夜)가 간밤에는 사라진 듯 시원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에는 우리 가족이 전라북도 완주 대둔산 계곡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가는 곳 들판에는 타들어가는 농작물, 가로수까지도 시들어가고,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논바닥에 물을 끌어대는 모습을 보니 폭염 속에 애타는 농심(農心)은 얼마나 힘들까. 피서지(避暑地)를 찾아가면서도 마음이 자꾸 괴롭기 만했다.

주말이라 숲속 계곡 넓은 주차장은 초만원이고, 가뭄에 계곡물은 말라 흙탕물이다. 나무그늘 밑 어디고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만원이다. 주변 민속 식당으로 가 점심을 먹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꿀맛 같은 휴식을 꿈꾸며 찾아간 계곡에 실망하고, 집에 도착했지만 낮 동안 달구어진 집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집을 비운 동안 햇볕을 흡수한 집안을 들어서니 땀이 줄줄 흘러 한증막을 방불케 했다.

폭염을 피해 해변으로 몰렸던 인파(人波)도 바다수온이 오르니 한가해졌다. 사람들은 숲속 계곡으로, 은행, 도서관으로, 또는 백화점, 마트, 극장으로 냉방 찾아 유랑민처럼 떠돌았다. 어린이와 젊은 부부들은 워터파크를 찾아 물놀이를 즐겼지만 피부병이 옮아 병원을 찾았고. 노인들은 경로당 냉방기 앞에 몰려들었다. 어떤 기초생활 수급자는 냉방기가 없어 화장실에 수도를 틀어놓고 열기를 시키다 견디지 못해 경로당을 찾았다고 한다. 우리 마을 유일한 쉼터는 경로당이 아닐까. 이 모두가 폭염에 시달리는 우리 국민들의 고달픈 자화상이다.

한반도에도 111년 만에 유래 없는 찜통더위로 훨훨 타오르는 느낌이 든다. 입추(立秋)가 지나고 말복(末伏)이 지나니 폭염경보가 주의보로 바뀌고 있지만 가뭄은 계속되고 있어 언제 비가 올지 산천초목이 타들어 가는 듯 불안하다. 기대했던 태풍 ‘야기’도 중국 쪽으로 사라지고 모두가 비껴가니 안타깝다.

폭염과 가뭄이 동반하니 농민, 일용근로자, 저소득 취약계층에게는 살인적인 재해다. 채소·과일 값이 폭등하고, 가축이 집단폐사하고, 양식장에 물고기가 떼죽음을 하고 있지 않는가. 이 모든 재난이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라면 우리는 온실가스 줄이기 국민운동을 비롯해 모든 예방조치를 서둘러 실행해야한다. 더 큰 재앙이 오기 전에 미래의 우리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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