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호점산성은 고리산성, 백골산성에 이어지는 산성의 고리 중에 하나라 할 수 있지만 규모는 두 성보다 크다. 호점산성의 매력은 보은지역에 많은 점판암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거의 7, 8m나 되는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찾아갈 때마다 흥분시킨다. 문지나 성벽에 장대나 나무기둥 세웠던 흔적도 그냥 남아 있다. 게다가 성벽 위에 난 등산로가 약 3.5km나 되어 숲속을 걸으며 대청호의 절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아내와 함께 1시간쯤 드라이브를 하고, 2시간 걸은 다음 회남면 소재지서 보은 생삼겹살구이로 저녁식사를 하고 저녁노을에 빛나는 대청호를 바라보며 돌아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의면 초입에서 좌회전해 청남대로 들어가는 척하다가 구사리, 산덕리를 슬그머니 지나서 염티재를 넘으면 남대문리이다. 염티재는 신안에서 들어오는 소금배가 금강나루에서 짐을 풀면 짐꾼들이 소금 가마니를 지고 보은으로 넘어가던 소금고개이다. 이들이 염티에서 호환(虎患)을 만나기도 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마을 어른들은 말한다.

남대문리는 호점산성 남대문 바로 아랫마을이라는 뜻이다. 남대문리를 지나 571번 지방도로에 접속하여 좌회전하면 대청호수에 놓인 남대문교라는 큰 다리를 건너게 된다. 그러면 바로 회남면 소재지이다. 소재지를 지나 대청호 둔치에 아름다운 갈대숲이 보이면 좌회전해야 보이스카우트 회룡야영장이 나온다. 다리 위에 차를 세우면 물 빠진 대청호 둔치에 우거진 갈대를 바라볼 수 있다. 갈대숲과 어우러진 자잘한 버드나무도 절경에 한 몫 보탠다. 아름다운 갈대숲이 붙잡는 소매를 뿌리치고 좁은 농로를 따라 2km 쯤 달리면 호점산성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가 있다. 보은군에서 마련한 산성 개요도와 안내 표지판을 읽고 출발한다.

등산로 통나무 계단을 밟아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좁은 골짜기로 들어간다. 옛날 옛적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데리고 살았다는 전설 같은 골짜기다.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인적은 없다.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감추어진 산성의 비밀이 나올 것 같은데 숲이 깊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개복숭아나무에 초록빛 열매가 소복하다. 산뽕나무에 어미돼지 젖꼭지처럼 새까만 오디가 올망졸망 매달렸다. 여기가 호점산성의 들머리 동문지이다.

북쪽으로 가파른 오솔길을 타고 올라간다. 길은 가팔라도 통나무를 놓아 걷기엔 불편이 없다. 올라갈수록 길은 더 가팔라지는데 줄 난간을 잡고 쉽게 올라간다. 올라가는 길에 전장의 흔적이나 기와 조각이나 선인들의 삶의 흔적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기록에 의하면 토기나 기와편이 나왔다고 하는데 내 눈에 띠지 않았다. 최영 장군의 태묘도 있고, 금칼도 어디엔가 숨겨 있다는 전설도 있으나 눈에 뜨일 리는 없다. 주변은 온통 납작납작한 점판암이다. 이 돌은 성을 쌓기에 아주 편리할 것 같았다. 구들장처럼 납작해 무겁지 않은데다가 다듬을 필요도 없이 기와를 올리듯 쌓기만 하면 되니 부녀자들도 가능할 것 같았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등마루를 타고 쌓은 성벽이 남아 있다. 혹 무너지기도 하고 혹 성벽의 모습이 남아 있기도 하다. 여기가 북문지이다. 북문지는 낙엽 더미에 묻혀 있긴 해도 그런대로 원형을 알아볼 수 있다. 누군지 성돌을 모아 장난삼아 탑을 쌓아 놓은 흔적도 있다. 잠깐 동안 재미있는 놀이로 문화재는 무너져 원형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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