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벗을 ‘지기지우’라고 한다. ‘과연 나는 이런 친구를 몇 명이나 갖고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 필자에겐 그런 친구가 하나 있었다. 정말 착한 친구였다. 여간해서 화내는 법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학창시절 그 친구에게 신세도 많이 졌다. 둘이는 농구부에서 함께 뛰었다. 운동이 끝나면 둘이는 교문 앞 빵집으로 달려간다. 얼큰한 콩나물국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찐빵! ‘촌놈이 무슨 돈이 있냐?’며 돈은 어김없이 그 친구가 냈다.

졸업하자 둘은 다른 길을 걸었다. 필자는 대학을 진학했지만, 그 친구는 재수한다고 서울로 떠났다. 그러나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DJ’의 큰아들을 만남으로써 고난의 길을 걷게 됐다. 80년대 전두환의 신군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요주의 인물로서 그에겐 정보형사가 따라 붙었다. 급기야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아내마저도 못하게 되어 생계마저 위협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나는 이길을 걷는다!’라는 신념은 버리지 않았다. 

복도 어지간히도 없는 친구였다. 정치 해빙이 되자 동료들은 ‘장관이다, 국회원이다’라며 한 자리씩 얻어 찼지만 그는 겉으로 맴돌기만 했다. ‘DJ’가 대통령이 되기 1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나이 겨우 50이었다. 그해 여름 둘이는 고향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자네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지 30년이 됐다. 그 동안에 단 한 사람이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을 보았는가? 그 사람을 말해주게!”라고 질문했더니 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한참 후 “못 봤다. 아니,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건 고사하고, 다 도둑이야! 거짓말만 안 해도 다행이지!”라고 덧붙였다.  

노회찬 의원이 자살하자 의견이 분분하다. 그는 유서를 통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의 빈소에는 수만명의 추모객이 발을 잇고, 정의당의 지지율이 상승했다고 한다. 혹자는 ‘노회찬 신드롬’이라고 평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어떤 경우라도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고 하자 정의당과 민주당은 일제히 반발했다. 정의당은 “무능한 홍준표 전 대표의 막말”이라고 일갈했고, 민주당은 “잔혹한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비판했다.

‘아노미(anomie)’란 말이 생각난다. 그리스어 아노미아(anomia)로서 신의 뜻이나 법을 무시한다는 뜻으로서 가치관의 혼란 상태를 말한다. 노의원은 기자의 질문에 돈(5천만원)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시민들은 노회찬 사건을 보면서 아노미를 느낀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간이 안 된다. ‘다 도둑이야! 거짓말만 안 해도 다행이지’라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간 친구의 말이 두고두고 생각난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 전도된 사회! 오늘의 현실이 걱정되고 두렵다. 걱정되고 두려워도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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