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냉장고 사용법을 보면 음식물을 너무 꽉 채워 두면 냉기가 잘 흐르지 않아서 냉장 효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 논리를 가지고 귀신도 곡할 정도로 냉장고를 꽉 채워놓는 습관을 지닌 우리 집 대장에게 잔소리하면 오히려 혼난다. 냉장고를 꽉 채워 넣는 것을 정당화하는 기본 논리는 사람은 준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크게는 전쟁 날 것을 준비하여 쌀은 최소 5포 이상은 가지고 있어야 하고, 생수도 있어야 한단다. 설만 되면 제사상에 올려야 하는 병어 값이 오를 대로 오르니 싼 때 사서 냉장고에 쟁여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준비성 없고 줏대 없는 소리 한다고 핀잔이다. 한편 냉장고와 함께 붙어 있는 냉동고는 가능한 가득 채워야 냉각 효과가 높아진다고 한다.

새로운 생활 양식으로 이야기하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는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니멀 라이프는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적게 가지면서 삶의 중요한 부분을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생활방식으로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의미의 욜로(You Life Only Once)도 아끼고 모으고, 집사는 데 청춘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생활 태도를 의미한다.

현대 사회는 풍요 속의 빈곤을 이야기한다. 많은 물질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물질로부터 인간은 점점 더 소외되고, 물질에 대한 종속으로 인간의 소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와 욜로의 생활 방법은 인간 회복 운동이기도 하다. 이들 철학은 종교, 참선, 전략적 경영, 시간관리 방법 등에서 주장하는 논리와 맥을 같이 한다. 즉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고, 중요한 것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 그리고 우리의 삶을 투자하는 것이다.

나는 10여 년 전에 인도에 연구교수로 나가 있었을 때 한국에서 가지고 간 큰 트렁크 한 개에 배낭 하나를 가지고 가서 1년을 생활하였다. 불편한 것을 몰랐고, 그 기간 5년을 미룬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비유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과 조직에는 냉장고만 있지 않다. 냉동고도 함께 있다. 이에 냉장고와 같이 여유가 있고 냉동고와 같이 채우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냉장고에서 불필요한 것은 제거하여 여유 있게 하고, 필요하고 해야 할 것은 냉동고처럼 채워야 할 것이다. 목표를 채우기 위해 수단은 좀 더 신축적이고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여야 한다. 그것은 사람 또는 목적을 좀 더 생각하는 것이다. 조직도 그러하다 회의와 규칙에 얽매이다 보면 조직의 목적이 사라질 수 있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사람을 보는 것이다.

내 연구실에는 지난 30여 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사용할 기회가 없는 대학과 대학원 때 자료를 신줏단지처럼 보관하고 있다. 이처럼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해라.” 하니, 우리 집 대장에게 냉장고는 여유 있게 냉동고는 채워서 사용할 것을 말해주고 싶어도 나이 들어서 한 말 또 한다고 할까 봐 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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