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오늘은 마음껏 씻어본다. 가뭄으로 물 한 방울이 아까워 세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얼굴이 까맣다. 씻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밭에 물주며 햇볕에 그을려서인지 알지 못하지만 거울에 비춰진 나는 까맣다. 오늘 장맛비가 시작되는 날 그간 씻지 못했던 얼굴을 하얘질 때까지 씻어 보련다. 비록 닦이지 않을지라도 뽀얀 얼굴이 비춰지리라는 희망으로 닦아 보련다.

우리 밭에는 물이 없다. 지하수 개발 업자를 불러 시도해 보았으나 물이 없다며 포기하고 돌아갔다. 그냥 살아보려고 했으나 물 없이는 도저히 농사 짓기가 어려울 것 같아 다른 업체의 더 큰 기계를 불러들였다. 조금 파기시작 하더니 곧 암반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암반을 뚫고 들어가면 양질의 암반수를 얻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다가와 포기해야겠다고 한다. 파고 또 파도 암반이라 더 이상의 작업이 어렵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파이프를 뽑아 올렸다. 허망하다.

봄내 잘 내려주던 비가 어느 날부터 우리 곁을 떠나갔다. 일기예보를 검색해 보았으나 비 소식은 없다. 숨이 막힌다. 수확을 앞둔 옥수수 잎이 또르르 말리고 모든 작물이 타들어 간다. 물을 떠다 주었지만 역부족이다. 어쩔 수 없이 냇가에서 경운기로 공수해와 흥건하게 적셔 주었다. 하지만 폭염 속에서 주는 물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가뭄은 점점 심각단계에 이르렀다. 몸과 마음이 타들어 간다. 까만 얼굴이 더 까매진다.

물주는 횟수를 점점 늘렸다. 밭을 바라보면 안타까워 그냥 있을 수가 없어 계속 실어다 주었다. 물을 실어오던 냇물도 가뭄이 계속되자 점점 줄어든다. 삽으로 깊이 파들어 가야지만 겨우 받아올 수 있다. 그런 상황에 씻을 물이 어데 있겠는가. 이웃 논밭에서 물싸움이 났다. 물싸움이 시작되면 장마가 온다는데 아직 장마 예보는 나오지 않고 있다.

조금만 버텨달라고 부탁했다. 힘들고 어려워도 지금껏 잘 견뎌 왔듯이 조금만 더 견뎌 달라고 위로하며 부탁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희망으로 버티어 나가라고 부탁한다. 억지 부탁인건 알지만 안타까움에 실없이 해보는 것이다. 오직 말라들어 가는 냇물이 희망이다. 그마저 마르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는데 까지 해보는 거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는 거다. 지금 내가 지쳐 쓰러지면 나에게 희망을 갖고 버텨온 저 작물들이 한꺼번에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나를 바라보며 오늘도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왔다. 그토록 애태우며 기다렸던 장맛비가 시작된다는 예보가 나왔다. 반가움에 격한 감정이 솟구친다. 경기를 마치고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한 선수를 보며 함께 울컥했던 심정처럼 가슴이 뛴다. 얼마나 애태우며 기다렸던 소식인가. 강남 갔던 제비가 박씨를 물고 돌아온 것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다. 기다림은 희망을 안겨준다. 소원하면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 반드시 승리 하리라.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승자의 미소를 보낸다. 그간의 힘들었던 고통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그 공은 검게 탄 얼굴에 훈장처럼 남아있다. 이제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 옥수수를 먹으며 잊을 것이다. 지난 시간은 감춰지고 또 다른 희망을 품고 제2의 농사전투를 계획하며 낮잠을 즐기고 있겠다. 내일의 걱정은 내일 맞이하고 오늘은 달콤한 낮잠을 즐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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