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 경영학과

단양은 남한강이 굽이굽이 흐르며 산수가 잘 어우러지는 풍경이 좋은 고을이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은 이곳에 군수로 부임해 고을을 두루 돌아보고 산수의 아름다움에 놀랐다.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등 뛰어난 절경이 7개나 됐다. 8경을 만드는데 하나가 부족하자 청풍군수를 만나 옥순봉을 단양으로 편입시켜 단양팔경을 만들었다. 이것이 영동의 관동팔경과 더불어 단양팔경의 시작이었고, 단양팔경은 모두가 물가에 위치한 기암절벽이다.

그러나 단양은 계곡은 깊고, 평야지가 적어 농업이 주업이었던 옛날에는 농사짓기에 좋은 땅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단양에는 큰 부자가 없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은 전국을 다니면서 지리·사회·경제를 연구해 택지리를 저술했다. ‘청풍 동쪽은 단양이고, 단양 북쪽이 영춘이다. 이 세 고을은 모두 시내와 골짜기가 험하고 들이 적다’고 팔도총론에 서술했다. 또한 복거총론에서는 “영춘·단양·청풍·제천 네 고을은 비록 충청도 지역이지만 사실은 한강 상류에 위치하였다. 두메 가운데 강을 따라 석벽과 반석이 많다. 그 중에서도 단양이 첫째로 고을이 모두 만첩 산중에 있다. 10리 되는 들판도 없으나, 강과 시내, 바위와 골의 훌륭한 경치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영동은 바다에  바싹 다가있고, 단양은 험하고 궁벽 져서 모두 살만한 곳이 못 된다" 보았다.

그럼에도 단양은 주목 받는 고을이었다. 고려시대 역학에 통달한 역동 우탁 선생(1262~1342)이 단양에서 태어났고,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1342~1398)의 출생지가 단양 땅이다. 단양에 자리 잡은 구인사는 100년의 역사가 안 되지만 천년고찰에 버금가는 천태종의 본산이 됐다. 또한 단양은 인구가 3만여명에 불과한 작은 고을이지만 풍경이 아름다워 충청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명승지가 됐다.

좋은 땅의 풍수는 산수(山水)의 조화로운 어울림이다. 돌이 많은 곳에서는 흙이 있는 곳이 명당이고, 계곡이 좁은 곳에서는 땅이 넓어지는 곳을 주목하여야 한다. 물길이 도는 곳에서는 물길의 안쪽으로 기운이 모이고,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평평해지는 평지지역이 사람이 살만한 곳이다. 단양은 연단조양(鍊丹調陽)라 해 ‘신선들이 사는 고을’이라는 데서 지명이 붙어졌다. 신선들이 사는 동네, 지역은 좁지만 풍경이 아름답고 토질이 좋아 무릉도원의 고을이다. 단양에서 나는 마늘, 사과, 약용작물은 인기 있는 단양의 특산물이다.

이미 선조대로부터 단양은 산이 많고 계곡이 깊어 평양지가 적지만 경치가 아름다워 심신을 힐링하는 고을로 알려졌다. 최근 개장한 만천하스카이 워크와 남한강변 절벽 아래 데크로 연결된 단양 잔도길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인기 코스가 되었다. 남한강과 소백산, 월악산, 금수산 등 남한강변 산천을 잘 이동할수록 연결하면 세계적인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데크도 설치하고, 케이블카, 출렁다리 등 필요한 시설들이 더 보완되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즐겨 찾는 명승지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먹거리도 늘어나서 사람 살기에 좋은 고을이 될 것이다, 강물이 굽이굽이 감싸 돌아 풍수가 좋은 단양에서 인물도 나고, 사람 살기에도 좋은 고장이 되기를 바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