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우리가 어릴 적에는 어른이나 형들이 하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사내 대장부라면 삼국지를 열 번은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언젠가는 읽어야지 생각을 했는데, 중학교 때 마침 서울에서 고학을 하던 큰 누나가 삼국지 한 질을 사왔습니다. 박종화가 번역한 5권짜리였습니다. 물론 세로글 편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힘겨웠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 이름에 치인 겁니다. 진도가 참 더뎠습니다. 그렇게 쓴 약 먹듯이 2차례 읽었습니다. 세 번째 읽을 때서야 비로소 등장인물의 이름이 낯익어지고, 사건들이 눈에 들어오며 심리묘사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삼국지에 빨려들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 다섯 번 정도 독파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웅장한 서사시는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읽는 소설들이란, 정말 나부랭이들에 불과했습니다. 처음에 너무 센 소설을 읽었던 것입니다.

요즘은 유선방송 텔레비전에서 날마다 삼국지가 나옵니다. 물론 드라마입니다.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요즘 세대들은 삼국지를 영상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기억된 삼국지는 배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나 표정과 사건의 줄거리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삼국지는 이미지가 아니라 소설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처세술의 원리가 설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설가들의 정신이 늙으면 삼국지를 번역합니다. 자신의 명성을 얹은 번역으로 마지막 돈벌이를 하죠. 제일 먼저 이문열이 번역을 하더니, 뒤이어 황석영이 번역을 하고, 장정일이 그 뒤를 이었더군요. 이것을 보아도 삼국지는 시대를 뛰어넘는 소설의 잣대라는 증명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 시대는 세 소설가의 삼국지를 비교해가며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 세대의 행복이겠죠.

옛날부터 중국에는 4대기서가 있어, 애독자들의 손때를 탔고, 그것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인간사회를 학습했습니다. 4대기서는,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있고 훌륭한 책이 삼국지 연의입니다. 어느 판본을 읽든 상관이 없을 듯합니다. 그렇지만 드라마로 보지 말고 소설로 읽어야 그 참맛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이 드러낸 정신의 향기는 소설속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정사인 ‘삼국지’를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원래 소설의 제목은 ‘삼국지 연의’입니다. 연의란, 뜻을 좀 더 그럴듯하게 덧붙였다는 뜻입니다. 사실에 상상력을 보태서 그럴듯하게 부풀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사실이란, 정사인 ‘삼국지’를 말합니다. 삼국지는 위촉오 세 나라 중에서 위나라를 정통으로 삼아서 서술하는 체제를 택했습니다. 조조가 한 왕실을 이어받았다고 본 것이죠. 그리고 여러 가지 맥락으로 보면 그것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삼국지 연의는 도원의 결의형제부터 시작을 하니, 이야기의 중심이 촉나라를 중심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조조는 당연히 한 왕실을 찬탈한 역적 놈으로 표현되었죠. 정사인 삼국지를 읽으면 소설과 정사가 이렇게 다르게 접근한 것이 어떤 차이일까 하는 것을 비교하는 안목을 갖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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