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성벽은 22단 정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돌은 세로가 45cm 정도 됐다. 남은 성벽의 높이는 8~9.5m 정도 된다. 돌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일정하지 않은 돌을 맞추어 정교하게 쌓았다.

놀랄만한 것은 수구가 원형대로 남았다는 것이다. 먼데서 보면 두 개의 수구가 마치 눈을 번쩍 뜨고 부라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성벽을 기어 올라가 수구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수구의 너비는 70cm 정도 되는 정방형이다. 성돌이 가로 5개 정도 되어 보이고 세로는 두 겹으로 세로쌓기를 하였다. 깊이가 꽤 깊어서 4m는 충분히 될 것 같았다. 아마도 성의 내부에 저수시설과 통해 있었을 것이다. 수구에서 바로 계곡으로 물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수구를 암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수구의 크기가 커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구주변을 둘러보니 밖은 돌로 견고하게 쌓아 올리고 안은 흙으로 메운 외축내탁법으로 축성했다. 성석은 약간 붉은 빛과 황색을 띠는 활석이다. 성석을 다듬기는 화강암보다 쉬웠을 것이다. 성벽의 너비가 4m나 되기 때문에 크기는 작아도 견고한 성이다. 성의 모습도 정상부에서 산줄기를 따라 포곡식으로 쌓고 성벽 가운데를 이어서 필요에 따라 포곡식과 테메식 축성법을 겸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남문지로 올라가 은행리 쪽으로 하산하였다. 올라오는 길에는 많지 않던 멧돼지 흔적이 엄청나게 많다. 내려오는 길을 따라서 방금 지나가며 주둥이로 낙엽을 헤집어 놓은 것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방금 지나간 자리이다. 아직 도토리가 남아 있나. 점심거리를 찾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 녀석들이 두렵고 저 녀석들은 내가 삶의 영역을 침범한 훼방꾼으로 보일 것이다. 그놈들은 성을 쌓을 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성을 쌓아 적을 방어한다. 까마귀 울부짖음은 언제 그쳤는지 모른다. 온 산이 고요하다. 아랫마을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염불소리 때문에 까마귀가 짖기를 그쳤을까.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길을 막아 울타리를 쳤다. 출구를 찾을 수 없다. 멧돼지나 고라니의 훼방을 가로막기 위해 개바자를 쳤다. 현대판 성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연과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누가 이길 것인가. 사람이 이기면 자연이 무너지고 자연이 이기면 인간이 멸종되겠지. 결국 다 망하는 것이다.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상지리 마을 유래비 앞 정자나무 아래에서 물을 마시고 준비해간 빵으로 점심을 먹었다. 내가 앉아 있으니 마을 노인들이 다가와서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사람은 63세라 했고 한 분은 7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63세인 사람은 성티산성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다 하고, 70대 노인은 나무하러 가서 보았다고 한다. 수구가 있는 것도 정확하게 알고 있고 옛날에 전쟁할 때는 성벽을 기어 올라가고 위에서 돌을 던지고 했다는 것까지 상상해서 설명했다. 다만 수구를 굴이라고 표현해서 내가 수구라 하니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그 안으로 사람이 드나든 곳이다'면서 큰 소리를 했다.

주민들은 자기 지역의 문화유적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문화와 지역 역사를 제대로 알려 긍지를 갖게 하는 것도 고향 사랑의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논쟁을 해도 내가 이기지 못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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