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오늘도 한 장의 책장이 넘겨졌다. 하루가 시작된다. 두툼하던 책이 어느새 반도 더 넘겨졌다. 오늘은 오늘의 책장을 넘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출발했다. 충남 청양에 있는 청양호 출렁다리가 목적지다. 한적한 산과 들을 가로질러 시원하게 달려 목적지에 도달했다. 주차장엔 벌써 반 이상 채워졌다. 전국에서 가장 길다는 출렁다리 아래 호수는 일렁이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출렁다리는 춤을 춘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즐겁다. 중간 지점 교각 탑은 청양의 명물 고추 모양으로 설치돼 있어 지역특산물 홍보도 겸하고 있었다. 출렁대는 다리를 건너갔다. 갑자기 용이 꿈틀거리고 호랑이가 포효한다. 깜짝 놀라 몸을 움찔 했으나 그건 조각품이다. 호수를 끼고 둘레길이 길게 연결되어 있어 하늘, 산, 물을 가슴에 안으며 걸을 수 있었다. 얼마를 걷다보니 놀이 나온 아낙네들이 술 한잔 마시며 골짝이마다 흥겨운 칠갑산노랫가락이 가득하다. 나까지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청양호를 뒤로하고 장곡사로 향하다 그림 같은 계곡에 안겨있는 들깨 칼국수 집으로 이끌렸다. 우리도 그림속의 일부가 됐다. 들깨 칼국수의 맛은 피로까지 잡아준다. 국수를 건져먹고 남은국물까지 들이킨다. 텅 빈 그릇에 다소 미안함을 느끼며 식당을 나와 장곡사로 출발했다.

꾸불꾸불 돌고돌아 장곡사에 도착했다. 숲은 고요하고 울어준다는 산새소리마저 감춰진 사찰엔 풍경소리만 고즈넉하다. 그 조용함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두 곳의 대웅전이 있는 특색을 지닌 장곡사는 두 사찰이 합쳐진 것인지 모르나 방향도 각기 달랐다.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으로 나뉘어져 있어 하늘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상대웅전으로 올라갔다. 법당에 들러 참배를 드리고나와 발아래 펼쳐진 속세를 내려다보았다. 선인이 된 흉내를 내고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다음으로 간 곳은 장승공원이다.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장승은 지역 간 경계나 이정표, 마을 수호신으로 세워졌다 한다. 정월 대보름에 장승제를 지내며 국태민안과 무병장수를 기원했고, 장승을 세우는 목적이 잡귀를 쫓는데 있어서인지 무서운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백제문화체험 박물관을 찾았다. 백제 의상체험, 백제 토기 만들기 체험 등 가족단위로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과 옛 거리를 재현해 놓은 체험관도 있어 교복 체험도 하며 이곳저곳을 즐기다 밖으로 나오니 농경문화 전시관도 있어 농경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등 다양한 백제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루가 피곤하다. 이제 불을 끄고 조용히 오늘의 책장을 덮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의 인생이 새겨진 한권의 책. 그 책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나의 하루가 지나간다. 지난날의 페이지는 다시 읽을 수 없고 내일의 페이지도 미리 읽을 수 없다. 오늘의 페이지만 열고 읽어나갈 뿐이다. 책에 쓰여 진 대로 하루를 느끼고 행동하며 살고 있다. 책장이 한장 한장 넘겨질 때마다 새로운 일들이 펼쳐진다. 어떤 날은 글을 쓰고 어떤 날은 농사일을 하며 어떤 날은 여행을 떠난다.

한권의 책이 반 이상 넘겨졌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이다. 그러나 아직 읽어나갈 부분이 꽤 두툼하게 남아있다. 궁금하지 않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무어라 적혀 있을지 궁금하지 않다. 마지막 장이 넘겨지는 날 나의 책은 어떤 향기가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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