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책꽂이]초의 ‘초의다선집’
[시인의 책꽂이]초의 ‘초의다선집’
  • 충청매일
  • 승인 2018.04.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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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몇 년 전에 전남 영광의 한 절에 가서 옛날 법식대로 작설차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곳 스님이 재료를 준비하고 차를 덖는 일을 함께 했는데, 목장갑을 3겹 끼고 커다란 쇠솥에 상반신을 다 집어넣다시피 해 차가 타지 않도록 계속 손을 헤집어서 적당히 덖는 작업이었습니다. 몇 분만 하면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하지 않던 동작을 하는 까닭에 몸 전체가 비비틀릴 정도로 괴로웠던 체험이었습니다. 다행히 한나절로 그치고 스님이 주는 차를 얻어마시고 왔는데, 그 뒤로 차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본 책이 이 책입니다.

차는 원래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다시 우리나라로 전래된 식물입니다. 그래서 중국 쪽의 정보에 의지해 차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총정리한 책이 바로 이것입니다. 막걸리가 몸을 쓰는 일반 백성들의 기호품이었다면 차는 정신활동을 하는 상류층의 기호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맑게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스님들이 차를 많이 마신 이유입니다. 초의 스님도 그런 스님 중의 한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청나라의 제조법을 참고해 차의 모든 정보를 정리한 책입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대중을 위한 책이기보다는 작설차를 전문으로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차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다선이란 말에서 보듯이 옛사람들은 차 마시는 행위를 참선의 연장선으로 생각했습니다. 생각이 멈추어야 맛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유배지에서 선비들에게 차마시는 스님들은 좋은 벗이었습니다. 추사 김정희도 유배시절 내내 초의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합니다. 맛을 아는 벗을 둔 셈입니다. 차를 마시는 것은, 차맛을 아는 벗을 만날 때 가장 큰 울림과 깨달음을 줍니다.

근래에는 중국에서 보이차가 들어오면서 차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많이 변했습니다. 마시기 편하고 우리기도 편해 손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국 시장이 열리면서 생긴 일인데, 그러다보니 좋은 차인지 나쁜 차인지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이 더욱 필요해졌습니다.

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유통과정에서 생기는 불신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일단 큰 회사의 차부터 마시는 게 좋습니다. 어느 정도 맛에 익숙해지면 좋은 차와 그렇지 못한 차가 구별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면 벌써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이차는 숙성차라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손으로 직접 덖어서 만드는 작설차 좀 까다롭습니다. 다기나 물의 온도에 따라서 맛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작설차를 마실 때는 좀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면 알수록 참 맛을 깊게 우려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차 만드는 사람들이 보는 전문서인 이 책이 세상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입니다. 동양사회에서는 붓글씨 같은 것으로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교류를 했듯이, 차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말을 못해도 차 한 잔 나누면 혀끝이 마음을 전해줍니다. 그 마음의 지도 같은 것이 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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