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따스한 바람이 귓전에 불어와 얼었던 대지가 녹았다. 가끔 비가 촉촉이 내려 더욱 부추긴다. 삽과 괭이 들고 들로 나갈 준비를 한다.

4월을 심으러 고향 밭으로 갔다. 내려가며 이원 묘목특구에 들려 넝쿨장미, 왜성사과나무, 체리나무, 비타민나무, 반송을 샀다. 겨우내 외롭게 지내던 밭이 반갑게 맞이 해준다.

옛말에 4월엔 부엌의 부지깽이도 심으면 싹이 돋아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생각하며 묘목을 심었다.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심는 건 아니고 좋다고 입소문 나는 나무는 해마다 조금씩 심고 있다 .나중에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심는다.

몇 해 전 심어놓은 구지뽕나무는 벌써 빨갛게 열매로 답한다. 자두나무 역시 빨갛게 고마움을 전해준다. 심기가 어렵지 심어놓으면 이렇게 돌아온다. 이까짓 것 심어 뭐해 하며 심었는데 막상 심고 보니 예쁜 꽃과 열매로 답이 온다.

즐겁다. 이것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일까. 올해는 퇴비를 많이 구입했다. 우리가 탕수육, 치킨, 피자를 먹어줘야 하듯 나무도 영양가 있는 퇴비를 섭취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옛날 퇴비가 흔치않던 시절엔 마을 어른들이 이른 새벽 망태기를 짊어지고 개똥을 주우러 다녔었다. 많이 먹은 놈이 많이 싼다고 했다. 많이 먹어야 맛있게 돌려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거름을 잔뜩 주었다.

나무고 곡식이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 퇴비를 많이 사용하면 알차고 성실한 열매로 보답한다. 맛 또한 배가 된다. 건강하게 자라 병충해에도 잘 견뎌낸다. 모양을 생각하면 농약을 살포해야 하지만 내 가족의 먹거리인 만큼 되도록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모양은 별로다. 그래도 건강을 생각하며 맛있게 먹는다. 못생겨도 맛은 좋아 라는 말이 있다. 비록 모양새는 보잘 것 없지만 맛은 최고다. 먹고 먹어도 지칠 줄 모르게 먹는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때 나를 생각하고 심는 게 아니다. 자손들의 즐길 거리를 준비하려고 심는 것이다. 비록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해도 열심히 심어 놓으면 누군가는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할아버지께서 심어놓았던 감나무 호두나무는 지금 전성기를 맞아 나에게 선물을 안겨준다. 나무를 심는 마음은 시간을 심는 것이다.

말없는 농부는 묵묵히 일로 답한다. 농민의 이미지는 농작물이다. 농작물에서 그들의 얼굴이 나타난다. 이제 또 봄 가뭄이 시작될 것이다. 봄에 심겨진 나무들이 혹독한 신고식을 거처야 한다. 농사는 하늘의 도움이 없으면 지을 수 없다. 노력하는 만큼 날씨도 도와줘야 한다.

나무를 심는 마음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먹을 만큼만 돌려주면 감사하고 고맙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한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내가 아닌 너를 위하는 마음으로 심고 가꾼다. 올 한 해도 농심을 태우지 말고 적절한 시기에 적당량의 단비가 내려주길 소원하며 나무를 심는다.

그동안 자연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고 살았다. 아니 그것은 받은 것이 아니라 빌렸던 것이다. 나는 오늘 자연으로부터 대출받은 상환의 일환으로 한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심고 가꾸는 정성으로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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