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우리 사회는 지금 미투(Me Too) 운동 영향으로 인권의 새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페미니즘(Feminism)은 전적으로 여성 피해자를 보호하고 남성 가해자를 처벌하자는 주의(主義)는 아니다. 성 관련 범죄는 양성 모두에게 적용돼야 하며, 특히 권력을 악용한 성범죄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미투 운동은 동서양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오늘날처럼 공개적이지는 못했다. 그런데 ‘나도’라는 연대가 불가능했고 유교질서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도 오늘날 미투 운동과 유사한 신문고를 울린 사례가 있었다.

정조 13년(1789) 여름에 전라도 강진현 탑동 마을에서 지속적인 성추문에 시달리던 한 여인이 가해자를 직접 응징한 사건이다. 당시 18세의 김은애라는 출가(出嫁)한 여인이  자신에게 불길처럼 번지는 나뿐 소문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기에 선택한 최후의 수단으로 살인을 했다. 그런데 죽음을 당한 사람은 소문을 내서 음해한 안(安)씨라는 여인이었고, 본인과 간통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안 씨를 통해 청혼해 온 이웃에 살던 진짜 가해자 최정련을 죽이지 못하고 관아에 자수를 했다.

사건의 내용은 김은애가 시집오기 전에 이웃에 살던 최정련이 그녀와 간통했다는 식으로 소문을 내며, 안 여인을 중간에 내세워 청혼해왔다. 그런데 김은애가 허락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자 그들은 추잡한 말로 더욱 심하게 음해하니 그 분함과 억울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 관아에서 최정련을 처벌해 달라고 했다.

이 사건은 비록 오늘날 미투 운동과  성격이 조금 다르고, 나라의 왕까지 관여됐지만 피해자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고 용기 있게 자신의 무죄를 위해 나섰다는 점이다. 그래서 최근 미투 운동에서 보듯이 피해자의 인격을 수치와 분노로 치닫게 하면서 피해의식이 전혀 없는 가해자는 응분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미투 운동은 성적 피해자에게 마음속에 쌓인 원한과 분노를 해소하는 치유의 과정이며, 가해자는 엄벌(嚴罰)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에서 분노로 치닫고 있는 이 운동에 의도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는 사회혼란과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개연성이 보여 부작용이 우려된다. 또한 비공개된 이주여성들의 피해 고통은 정부차원에서 후속 대안을 세워야 한다.   

현대판 신문고라 할 수 있는 미투 운동은 소셜 네트웍과 같은 인터넷을 활용해 무분별하게 돌을 던진 사례도 있어 당혹감과 참담한 심정을 일으킬 때가 있다. 페미니즘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상황에 따르지 않은 무조건적인 ‘여성 우선’을 주장하는 ‘정체성의 정치’가 오히려 여성들에게 더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미투 운동도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여성 우선주의라기보다는 성별에 관계없이 ‘양성의 삶을 존중하고 평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태도와 행동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 및 기회평등을 핵심으로 여성상위를 낳으려는 본래의 목적도 중요 하지만. 이제는 성별대립이 아닌 양성이 서로 공존하는 인식으로 전환해 인권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아젠다(Agenda:議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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