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쪽수를 보면 아시겠지만, 분량이 대단한 책입니다. 담헌 홍대용은 학계에서 실학파로 분류하는 조선시대의 선비입니다. 우리가 훗날 실학파로 분류한 사람들은, 조선이 청나라에게 망한 사실을 깨끗이 인정하고,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우리 자신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대부분의 양반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큰 나라라고 하늘처럼 떠받들던 명나라가,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 우리가 오랑캐라고 비웃던 여진족들에게 망했으니, 명나라를 섬기던 당시 조선의 지배층이 받은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어이없게도 그들은 엄연히 대륙의 주인이 된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자신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착각 속에서 청나라와 최소한의 외교관계만 유지하고 나머지 모든 관계를 끊죠. 그리곤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입을 다뭅니다. 조선의 양반들이 오랑캐라고 여기는 그 청나라는 서구의 문명과 활발한 교류를 하면서 모든 면에서 대단한 발전을 보입니다.

바로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현실의 문제를 개혁해보자고 나선 사람들은 후대의 학자들은 실학파로 분류합니다. 그래서 실학자들은 청나라의 문물을 구경하려고 여러 가지 꾀를 냅니다. 가장 흔한 방법이 연례행사로 있는 청나라 사절단으로 청나라의 수도인 연경을 방문하여 그곳의 문물을 구경하고 서책이나 새 문물을 사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조선의 모습은 조금씩 바뀌어갑니다. 그리고 연경에 다녀온 사람들은 이런저런 글을 많이 남깁니다. 주로 여행기가 많죠. 그 중에서도 한문이 아닌 언문으로 글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도 홍대용은 대단한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전 해에 중국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베이징은 도시 전체를 바꾸는 대단한 환경정비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베이징의 한 골목에서 저는 가슴이 칵 막혔습니다. 홍대용의 여행기에서 본 유리창이 포클레인의 삽날 앞에서 무참히 뜯겨지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보존지역 밖이라서 철거하는 중이라고 안내원이 말하더군요. 푸른 색 기와로 골목 전체가 길게 늘어섰는데, 그곳이 바로 청나라 조정에 물품을 들이던 유리창이었고, 그 앞에서 수많은 조선의 선비들이 신비한 물건을 구경하느라고 놀란 마음을 글로 표현하곤 하던 곳이었습니다. 이제 북경에서 우리 조상들이 구경하던 저자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너무 아쉬웠습니다.

조선 선비의 눈에 비친 200년 전 북경이 이 책을 읽으면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런 체험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100년 전 구한말의 책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울러 소개합니다. 다음입니다. 버나드 비숍 여사는 영국의 왕립학회 회원으로, 구한말에 우리나라에 왔다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글로 남겨서 그 당시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을 남겼습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살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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