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이성과 합리를 기초로 해 이루어지는 제도권 교육이 온 나라에 빈틈없이 작용하면서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잃는다는 것일 것입니다. 태초의 자연에 맞닥뜨린 사람들이 자연과 화해하는 법을, 지금과는 다른 교육 방법으로 후손에게 물려주며 수 천년을 이어왔습니다. 그런 교육방법이 미신과 비이성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제도권으로부터 쫓겨나 영영 사라져가는 시점입니다.
이때 제도권으로부터 쫓겨난 것 중에 하나가 신화입니다. 신화야말로 옛 사람들이 자연에 도전하고 패배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집단의 지혜입니다. 누떼가 수십만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달려가면서 일으키는 생명의 역동성은 지구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벅차게 만듭니다. 인류에게 바로 이런 시절의 지혜가 담긴 것이 신화입니다.
그러나 황당한 구조와 뜬금없는 배경 때문에 비이성과 몰상식의 대표로 간주되어 우리의 생활에서 제일 먼저 쫓겨납니다. 그렇지만 신화라고 이름이 붙은 까닭은, 그것이 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신들의 이야기라는 것은 그것을 믿은 사람들에게 믿어 의심치 않을 분명한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교도에게 예수의 부활이 믿어 의심치 않을 분명한 사실로 인지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신화는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그 겨레의 정신세계입니다.
제도권 교육에 남은 신화는 단군신화, 주몽신화를 비롯하여 겨우 문헌으로 정착한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신화가 문자로 남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서 점차 잊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망각은 우리 사회가 도시화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얼마나 많은 신들을 우리가 잊고 있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신들이 있어 우리의 삶과 기억을 풍요롭게 수놓았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풍요로운 신화를 단 한 번도 소개하지 않은 제도권 교육의 무자비한 논리성에 대해서 분노가 일어납니다.
신은 정신의 고향에 두고 온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지혜와 체취입니다. 그것을 떠나서는 민족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신들의 이야기는 이성의 칼날에 베인 영혼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유일한 약손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는 대체할 수 없는 신들의 이야기가 이 책속에 살아있습니다.
이렇게 쫓겨난 신들이 젊은이들이 많이 읽는 만화책으로 환골탈태되어 돌아온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한 젊은 만화가가 우리나라 토속 신들을 소재로 하여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해 그린 만화가 요즘 인기입니다. 옥황상제, 조왕신, 저승사자 같은 이름들이 만화의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시대가 바뀌긴 바뀐 모양입니다. 드라마에서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소재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쩌면 신화는 우리가 버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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