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많은 눈이 내린다. 따뜻한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시시때때로 변하는 창밖의 그림을 감상한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하얀 크레파스가 칠해진다. 도로위에 지붕위에도 하얗게 칠해진다. 겨울을 싫어했던 내게 변화를 가져온 건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겨울을 싫어한다. 눈과 동장군의 기세로 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엔 꽃과 풍족한 먹거리가 있다.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영글어간다. 생동하는 신비로움을 준다. 그러나 겨울엔 이 모든 것들이  잠들어 변화를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겨울이 되면 모두 사그라진다. 낙엽 진 앙상한 가지만 찬바람에 떨고 있다. 쓸쓸하다. 텅 빈 대지 위에 눈이 하얗게 덮이면 겨울은 다시 살아난다. 먹이 활동에 나선 조 수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모든 것들을 쉬게 만들고 갖가지 장면을 연출한다.

겨울은 조용하다. 모든 것을 덮어 잠재우고 얼려버린다. 호수와 강물을 얼려 휴식을 준다. 봄, 여름, 가을 쉼 없이 흐르던 냇물에 휴가를 주고 여행을 보낸다. 동면하는 개구리에 커튼을 쳐준다.

모두 잠자는 건 아니다. 겨울에도 자라는 것이 있다. 눈 덮인 지붕에서 녹아내리는 눈물이 자라난다. 겨울의 상징 고드름이다. 어린 시절에는 따서 먹기도 하고 칼싸움도 즐겼다. 햇빛을 받아 영롱한 빛을 발하는 고드름을 바라보면, 신비롭고, 수억 년의 세월을 지닌 종유석처럼 보인다.

축적된 영양소를 품고 있다 봄을 준비하는 생명체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처럼 애지중지 품안에 품고 있던 영양소를 내보낸다. 생명을 탄생하게하고 성장시키는 엄마젖 같은 겨울이다. 겨우내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게 품고 있다 봄이 오면 겨울 밖으로 올려 보낸다.

씨앗의 발아나 꽃눈 형성은 겨울을 거쳐야 한다. 자연적 춘화현상이다. 춘화처리를 해 주어야만 씨앗이나 싹 발육에 변화를 주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한다. 그 중요한 역할을 겨울이 해준다.

춘화현상이라는 겨울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어 나는 어느 날부터 겨울을 좋아하게 됐다. 겨울은 쉬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의 준비과정이고 출발점이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겨울은 또 다른 시작의 시점인 것이다. 이제 나도 겨울처럼 시작을 준비하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생각하며 다음을 준비해야겠다.

봄은 여름을 준비해준다. 씨앗을 파종하고 싹을 돋아나게 한다. 여름은 이를 받아 가을을 준비한다. 연약한 가지와 열매를 성숙시킨다. 튼튼하게 키워 가을로 넘겨준다. 가을은 이들을 성숙시켜 다음해에 파종할 수 있도록 씨종자로 만든다. 그런 다음 다음해의 준비과정을 겨울에 넘긴다. 화려한 공연도 무대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기에 성황리에 개최된다.

혹독한 찬바람은 지난 세월속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들과 고통 속에 힘들어했던 시간속의 나날들을 재조명 한다. 그 모든 것들이 바탕이 되어주고 그 바탕을 딛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한다. 그 근본이 눈 덮인 대지다. 무한한 명작을 탄생 시킬 수 있는 저력을 지닌 겨울 대지다. 대지위에 명작을 탄생시키려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간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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