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무턱대고 타인을 의심하고 경계만 한다면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가 없다. 인간이란 누구나가 남에게 의심받거나 경계당하면 반사적으로 굴욕감을 느끼게 되는 법, 따라서 자기는 의심하면서 상대에게 성의나 충정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일단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믿어야 한다. 이렇게 때로는 대담하게 믿어줌으로써 상대방의 성의나 정열을 이끌어내는 것도 사나이다운 배짱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신뢰가 낳은 세계적인 명 건축물인 일본 데이코쿠 호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도쿄 히비야에 있던 데이코쿠 호텔의 구관(舊館)은 이제 아이치현의 메이지촌(明治村)으로 이전돼 그 우아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응회암(凝灰巖)을 사용해 세워진 이 건축물은 미국의 건축가 프랑크 라이트가 설계한 것.

그는 응회암의 형상이나 색상 등을 엄격히 지정하고 현지에서부터 직접 운반, 불만스러우면 몇 번이라도 만족스러울 때까지 다시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형상이 완성될 때까지 몇 번이라도 다시 다듬게 했다. 그러나 그의 공사 방법은 엉뚱한 것이어서 한 장의 설계도도 없었다.

설계에 관한 모든 것은 라이트의 머릿속 에만 있을 뿐 라이트의 지시를 받지 않고서는 그 전체상은 물론 일부분의 윤곽조차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당초 예정되었던 면적 7천평은 어느새 1만1천평으로 늘어나 있었고 예산도 당시의 금액으로 300만엔이 그 배액인 600만엔으로 불어나 있을 정도였다.

라이트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고 파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세졌다. 그러나 사장인 오오쿠라 기하치로 남작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번 그에게 설계를 맡긴 이상 그를 신뢰하고 호텔의 완성을 기다려야 한다” 라이트를 비난하는 임원들을 설득, 오오쿠라 사장은 공사의 일체를 라이트에게 맡겼다.

1923년 9월 1일 기이하게도 바로 호텔의 개업일에 느닷없이 간토 대진재(關東大震災)가 엄습해 왔다. 그러나 도쿄 전체가 궤멸해 버린 이 대 재해에도 데이코쿠 호텔만은 끄떡없었다. 파괴된 부분도 없고 화재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라이트는 얼마나 기뻤던지 펄쩍펄쩍 뒷면서 말하더라는 것이다. “드디어 내 건축의 진가(眞價)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것도 오오쿠라 남작이 나에게 일체를 맡겨준 덕분이다.”

남을 믿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무분별하게 믿다가는 폐가 망신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믿어주기 때문에 성의와 정열이 생기는 것, 사나이가 큰일을 함에 있어 이 사람이다 싶으면 소신껏 믿어주는 대담성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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